[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독일계 미국 태생의 리처드 세일러(72) 시카고대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꼽힌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주류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경제주체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으며,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태생부터 행동경제학은 학계의 변방으로 취급 받았는데, 세일러 교수는 올해 노벨상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에 접목한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게 됐다.
◇‘제한적 합리성’ 체계화한 대가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세일러 교수를 제49회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 측은 “세일러 교수가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의 분석으로 통합한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노벨 위원회는 그러면서 세일러 교수의 업적을 △제한적 합리성 △사회적 선호 △자기절제 결여 등 세 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그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반한 행동경제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켰다는 점이 두드러진 공로로 여겨진다. 인간의 특성이 개인의 선택과 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데 기여했다고 노벨위원회는 평가했다.
그는 또 1987년부터 학술지에 ‘이상 현상들(Anomalies)’이라는 칼럼을 게재하면서, 당시 경제학에서는 쓰지 않았던 개별적 경제 행동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주목 받기도 했다.
그는 소유한 대상을 객관적인 가치 이상으로 아낀다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 등 경제와 심리의 접목을 개념화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행동 재무학’ 역시 세일러 교수가 개척한 분야다.
세일러 교수의 학문적 성과와 함께 행동경제학의 위상도 격상됐다. 그는 2015년 미국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세일러 교수는 대니얼 커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과 함께 행동경제학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두 교수는 앞서 지난 2002년과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이미 수상했다.
국내 한 사립대 교수는 “세일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하기보다 행동경제학을 더 발전시키고 체계화한 학자”라고 평가했다.
◇“대중화 열심히 한 친근한 학자”
행동경제학을 전공한 김상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일러 교수를 “행동경제학 초기 연구자”고 기억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동시에 행동경제학의 대중화 작업도 열심히 했다”면서 “대중뿐만 아니라 동료 경제학자들에게도 알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세일러 교수가 국내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저자로 유명한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넛지는 경제학에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세일러 교수는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는 뜻의 넛지라는 단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썼다. 강제로 무엇인가 금지 시키거나 명령하는 게 아니라, 옆구리를 쿡 찌르는 듯한 권유로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 파리를 한 마리 그렸더니, 밖으로 튀는 소변량이 80% 줄어들었다. 남성들이 무심코 파리를 조준하게 됐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일러 교수의 업적은 경제학 내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돼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까지 보편화돼 있다”면서 “그의 연구가 보다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일러 교수는 이외에 ‘승자의 저주’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 다수의 저서들을 집필하면서 대중적으로 친근해졌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금융계를 다룬 것으로 잘 알려진 영화 ‘빅쇼트’에서 해설로 잠시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처음 생긴 1895년 당시에는 없었다.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의 창립 300주년을 맞아 신설됐고, 1969년부터 시상해왔다.
이 상의 공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중앙은행 경제학상’이다. 상금은 다른 노벨상과 마찬가지로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7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