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 한국외대 경영대 명예 교수] 분노와 상처로 점철된 국정농단의 한 해를 보내고 2017년 정유년이 밝았다. 역사는 영광과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광과 승리의 뒤안길에는 패배의 영욕이 있다. 그렇기에 영광과 승리는 값진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마오쩌둥의 비전은 원대하고, 감동적이고,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국 인민에게 복음이었다. 그는 모든 인민이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이상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경제부흥을 위해 추진한 대약진운동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민평등 혁명’이라고 부르 짖었던 문화 혁명도 실패로 끝났다.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 회의는 마오쩌둥은 ‘당과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전대미문의 극좌적 오류’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탄핵했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그가 추진한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의 실책은 혹독한 비판과 격하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때 문화혁명의 최대 피해자인 덩샤우핑(鄧小平)이 나섰다. 그는 “마오쩌둥의 공이 칠이라면 과오는 삼”이라는 이른바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논리를 내세우며 중국 인민을 달랬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온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그 과오는 내가 앞장서서 바로잡아 나가겠다”며 자칫 위기를 맞을 수 있었던 국가의 정체성과 당의 정통성을 지켜냈다.
이를 바탕으로 덩샤오핑은 과감하게 중국에 시장 경제를 도입했다. 그의 실용주의 리더십으로 중국은 ‘고도성장’이라는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룩해 냈다. 지금도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베이징 천안문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인의 지혜와 금도를 새삼 느끼게 된다.
중국에 마오쩌둥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승만이 있다. 이승만은 열강의 이해관계, 사상의 대립등 해방공간의 험란한 대격동 속에서 대한민국의 진로를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확고하게 설정했다. 그의 혜안은 오늘날 ‘백두혈통의 세습독재’로 빈곤과 인권유린에 시달리는 참담한 북한과 비교할 때 참으로 위대한 결단이었다.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 3.15 부정선거 등 4.19 혁명을 초래한 정치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반공포로석방, 토지개혁, 미국의 조야를 놀라게 한 외교전략 등 이승만의 결단과 리더십은 ‘공칠과삼’의 논리에 충분히 부합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사람은 먹을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하여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 했다. 해외 원조로 연명하던 지구상 최빈국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글로벌 10위권 부국이 된 데에는 산업화를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자로 박정희를 매도하는 것은 공칠(功七)을 뺀 과삼(過三) 의 편향 논리다. 집권 내내 비판과 오명으로 시달린 전두환 정권도 알고 보면 고도성장의 화룡점정을 찍은 공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은 김영삼 정부도 문민 시대를 활짝 연 역사의 주인공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념적 편향을 벗어나며 민주화의 내연을 확대시켰고, 우리 문화를 세계 주파수에 맞춘 한류 열풍과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도약케 하는 국민 역량을 축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세대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의 기적이다. 우리는 IMF의 위기를 최단 시일에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IMF는 위기였지만 축복이었다. IMF를 거치면서 한국은 소홀했던 경제 펀더멘털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헌정농단의 국정 참사도 정치질서의 펀더멘털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전화위복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믿는다. ‘공칠과삼’을 넘어서 ‘모든 것이 합해서 선’을 이루는 성공신화가 2017년에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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