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汎) 삼성가의 장남인 이맹희씨 등 형제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상속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서로를 헐뜯는 비방전까지 벌어졌다.
전일(23일) 이맹희씨는 "건희(이 회장)는 현재까지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고 칼끝을 겨누었고, 이 회장도 하루만에 "감히 날 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안 된다.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양반"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상속 소송의 승패와는 별도로 형제는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됐다.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11살의 나이 차 때문에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둘은 형제였다. 이씨는 지난 93년 펴낸 자신의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 "아버지(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목욕탕에 들어가면 늘 목욕하는 시간도 정확하기 때문에 나와 창희, 건희 등은 그동안 바깥에서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곤 하던 기억도 난다"고 회고했다.
장자인 자신이 아닌 동생인 이 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로 지목됐을 때 이씨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공개적으로는 이 회장을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자서전에서 "동생 건희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내가 동생을 미워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결코 그렇지 않다.(중략) 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건희 체제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또 이병철 창업자의 사망 이후 외국에 나선 것은 "동생 건희가 정식으로 삼성의 총수가 된 마당에 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주장은 다르다. 이 회장은 "그 양반(이맹희)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당시 군부정권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했다.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양반이다. 아버지는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이병철 창업자의 경영복귀를 반대했던 차남 이창희씨의 투서사건에 이씨가 관련돼 있었고, 동생인 자신도 함께 고소당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씨는 자서전에서 자신은 투서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듯 공개적으로 "이건희 회장에 불만이 없다"고 말했던 이씨가 이 회장에게 `악감정'을 갖게 된 것은 CJ의 독립 과정 때부터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93년 이씨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은 제일제당(현 CJ)을 중심으로 삼성에서 독립을 선언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당시 이 회장은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학수씨를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발령내는 이른바 '이학수 파동'을 벌이면서 삼성과 CJ간 전면전이 펼쳐졌다. 이학수씨가 한 달만에 제일제당을 떠났지만,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이재현 회장의 이웃집에 삼성이 CCTV를 설치한 것을 두고 노골적인 비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97년 CJ가 삼성에서 완전히 분가한 이후에도 대한통운 인수전을 둘러싸고 삼성과 CJ가 노골적으로 맞붙는 등 관계가 껄끄러웠다.
이맹희씨는 스스로에 대해 "누구와 의견 충돌이라도 생기면 성격이 불같이 변한다"고 했다. 당연히 자신이 물려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삼성을 이 회장에 뺏긴 그가, CJ의 분가 과정에서 또다시 악감정을 품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씨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소송을 냈고, 아들인 이재현 회장은 지난 2월 삼성 직원의 미행 사실을 폭로했다. 삼성과 CJ 역시 회복이 어려울 만큼 사이가 벌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맹희씨와 이건희 회장은 이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셈"이라며 "삼성의 후계자 선정에서 시작된 갈등이 CJ 분가 과정을 겪으며 결국 파국으로 치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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