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9시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밥퍼나눔운동(밥퍼)본부 건물 1층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의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청량리 일대의 재개발로 인근 주민이 밥퍼를 ‘혐오시설’로 민원을 넣고, 무단 증축으로 서울시와 갈등이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오히려 따뜻한 응원과 도움의 손길이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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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엔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도 컸다. 벌써 5년 차, 매일 아침 9시 출근 도장을 찍는 자원봉사자인 이승희(85)씨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코로나19도 가족도 못 말린다”며 “안 힘들다고는 못하는데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지하철 기관사로 일하는 김봉열(62)씨도 마찬가지다. 13년 차 ‘최고참’ 자원봉사자인 김씨는 평일 아침 7시면 밥퍼를 찾아 3시간 동안 주방장이자 영양사 몫까지 담당하고 출근길로 향한다.
이날 밥퍼에는 자원봉사자 7명과 운영진 3명, 총 10명이 600인분 도시락을 쌌다. 코로나 사태로 건물 내부 배식이 어려워진 탓이다. 5개 조리대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은 오늘의 반찬인 두부조림, 청경채 무침, 김치를 가지런히 담았다. 오전 10시부터는 도시락에 옮겨 담은 반찬과 밥, 빵, 영양음료, 마스크를 파란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 1인분씩 포장했다. 이를 수레에 옮겨 담아 또 한 번 인근 굴다리 지하차도까지 여러 차례 나르는 운반 작업을 시작했다.
배식시간인 오전 11시를 앞두고 멀리서 온 노숙인부터 인근에 사는 노인들까지 이미 180여명의 사람들이 굴다리를 따라 100m 넘는 줄을 만들며 북새통을 이뤘다.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자원봉사자들이 체온을 측정하고, 바코드를 확인한 후 차례로 도시락을 나눠줬다. 대기 줄에 서 있던 A(86)씨는 “동두천에서 아침 8시면 집을 나선다”며 “평소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밥퍼에 들러 점심밥을 챙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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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한다. 인근 대학에 재학 중인 이규림(27)씨는 “원래 국까지 배식하는데 오늘처럼 봉사자가 적으면 준비할 수조차 없다”며 “오시는 분들께 더 많이 나눠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밥퍼는 2009년부터 시유지인 현재 자리에 임시 건물을 지은 터라 낡은 본부 공간을 증축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김 부본부장은 “서울시가 고발을 취하한 상태이지만 본격적으로 공사를 진행하지는 못하는 상태”라며 “기부채납 심의는 한 달 후인 2월 24일에 들어가 절차에도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복잡한 외부 상황도 문제지만, 당장 설 연휴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더 걱정이다. 이날 강당 한쪽에는 선물 꾸러미에 들어갈 핫팩, 내복, 넥워머, 간편 식품 등이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설 연휴에는 급식소 운영이 중단돼 노숙인과 노인분들의 끼니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선물 꾸러미를 나눠드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