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내 나이 벌써 반백살이래. 언제 이렇게 됐는지…. 최선을 다해 살았지. 남편 아이들 챙기며~.” (서울시뮤지컬단 창작뮤지컬 ‘다시, 봄’ 넘버 ‘인생길 버스 여행’ 중)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면 재미있을까요? 뭐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실제로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뮤지컬단 창작뮤지컬 ‘다시, 봄’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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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대단한 스타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 아니어서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습 장면 시연을 마친 뒤 간담회에 참석한 배우들이 울컥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짠하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나이 때문에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보단 다른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묵묵히 받쳐주던 50~60대 배우들이 주인공이 돼 자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다시, 봄’은 독특한 창작 방식을 취한 작품입니다. 공연 참여자들이 극 구성에 적극 개입하는 공동 창작 방식인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로 제작됐죠. 실제로 이 작품은 7명의 배우들을 비롯한 중년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 워크숍을 통해 극을 구성했습니다. 작품 속 캐릭터도 배우들의 실제 모습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지난해 초연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초연을 본 공연 관계자들로부터 진정성의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반응을 전해 들었습니다. 호평에 힘입어 약 5개월 만인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다시 공연을 올렸습니다. 개막 직전 언론 시연회를 통해 공연을 미리 봤는데, 소문대로 진솔한 매력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여성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셨을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갱년기, 폐경, 은퇴 이후의 삶, 애써 외면해왔던 꿈 등 생활 밀착형 에피소드를 뮤지컬로 접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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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뮤지컬단이 50~60대 여성의 이야기로 ‘다시, 봄’을 만든 이유는 공연시장 관객층의 확대를 위해서입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다시, 봄’을 만든 이유는 ‘디바이징 씨어터’ 방식으로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극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50대 이상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공연은 언제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한 번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관객 수도, 공연 시간도 제한돼 있습니다. 지금 한국 공연시장이 20~30대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인터파크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지난해 공연 결산 자료를 보면 연령별 공연 티켓 구매자 비중에서 30대가 32.6%, 20대가 31.7%, 40대가 21.9%를 차지했습니다. 50대는 7.5%, 60대 이상은 2.3%에 불과했죠.
그런 점에서 ‘다시, 봄’의 등장은 공연계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봄’은 16일 기준 인터파크 예매자 통계에서 50대 이상의 예매율이 41.5%로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이 작품 하나만으로 공연시장의 관객층이 하루아침에 넓어질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50대 이상이 즐길 수 있는 공연 콘텐츠가 나온다면 새로운 관객 층을 유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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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9년 처음으로 ‘맘마미아!’를 봤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다른 뮤지컬에선 볼 수 없는 관객들의 반응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아바의 ‘댄싱퀸’이 흘러나오자 어깨를 들썩이던 중장년 관객들의 모습이요.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관크’(관람 행위를 방해하는 신조어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배우들과 함께 신이 나 공연에 빠져든 관객들의 모습이 더 좋았습니다. ‘맘마미아!’는 이제 중장년을 넘어 전 세대가 사랑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시, 봄’은 다음달 1일까지, ‘맘마미아!’는 오는 6월 25일까지 공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