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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증시 어디로-④달러 약세가 증시 근간을 흔든다

강종구 기자I 2002.06.04 15:46:59
[edaily 강종구기자] 미국 증시가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다. 3일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200포인트 이상 떨어져 기술적 지지선인 9800선을 하회했고 나스닥지수도 1600선이 무너졌다. 대기업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8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 증시가 약세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엔론이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회계투명성 문제, 추가테러 위협, 불안한 국제정세 등 둘러보면 굵직굵직한 악재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달러화의 약세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경제 회복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며 해외투자자금이 탈 아메리카를 외치고 있고 이로 인한 달러 약세가 주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더우기 달러약세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감안할 때 미 증시는 한동안 달러약세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은 무리가 아니다.

◇미 증시 장기호황 이끈 강한 달러
미국 증시는 지난 수년간 상당부분 "강한 달러"의 달콤한 열매를 먹고 장기호황을 누렸다. 달러 강세는 미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매력을 높여 해외자본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 95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달러화 가치는 다른 통화에 비해 거의 50% 상승했다. 이로 인해 97년에 해외투자자금 유입액은 2540억달러에 달했고 98년에는 그 배로 늘었다. 경기가 하락국면이던 지난해에도 외국인 투자자금은 45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해외투자자금의 미국 러시는 미국경제의 호황에 기인한 것이면서 동시에 경제호황의 동력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강한 달러는 주가상승-소비증가-기업실적향상-주가상승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였으며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나 "신경제(인플레이션없는 경제성장)"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셈이다. 부의 효과란 주가가 오름에 따라 자산가치가 상승, 가계소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무역수지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도 경제가 장기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근간은 강한달러에 있었던 셈이다.

◇흔들리는 달러, 흔들리는 미증시
이제 미국경제는 강한 달러라는 초강력 무기를 상실해 가고 있다. 지난해 경기둔화와 9.11테러에도 불구하고 강세기조가 흔들리지 않던 달러화가 올해들어 완연한 하락추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6개월래 최저치, 유로화에 대해서는 16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급락이 증시하락의 주된 원인이라면 미 증시의 하락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달러급락-해외투자자금이탈-주가하락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달러화의 안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화 급락은 당분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나 미국 정부 관료들조차 달러화 약세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달러화가 아직도 고평가돼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달 30일 로버트 맥티어 미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달러가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는 것은 미스테리"라고 말했을 정도다. 골드만삭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이며 외환시장 분석의 최고권위자중 한 사람인 윌리엄 더들리는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달러화의 급락은 피할 수 없다"며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술 더 떠 "강한달러가 급격히 붕괴된다면 미국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금리는 상승하며 물가는 오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신경제의 몰락을 예언했다.

일각에서는 엔화와 달러화의 구매력가치를 비교해 볼 때 달러/엔 환율은 105엔정도가 적정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해외자금 이탈 부추기는 달러약세
달러약세와 함께 외국인투자자들은 미국자산에 대한 투자매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외국인투자가들이 미국시장에 투자할 동기를 거의 찾을 수 없는 형편"이라며 걱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려는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들이 올해 1∼2월 미국 증시에서 사들인 주식규모는 110억달러로 지난해 동기 330억달러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에서 이탈한 투자자금은 일본과 아시아 등 강력한 경기회복이 나타나고 있는 다른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도이치방크 AG 의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 후퍼는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은 자명한 현실이다. 수년간 미국 증시는 투자자들에게 두자리수의 수익률을 안겨줬다. 그러나 지난 2000년과 2001년 S&P500지수는 매년 10%이상 하락했다. 또 올해들어서는 5월말까지만 해도 8%이상이 추가하락해 그 골짜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일본 아시아 등 매력적인 투자처가 있는 마당에 증시하락과 달러약세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미국 증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달러약세 반사이익도 있다
미 증시의 하락추세가 어느정도까지 이어질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의 공감대는 어느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제는 분명히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증시와 달러는 고평가돼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달러 약세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해외투자자금 유출-주가 및 채권가격 하락-국내소비 감소-경제성장 둔화-주가하락-해외자금 유출 가속으로 정리된다. 이제 강한 달러가 부의 효과를 창출했던 것 처럼 약한 달러가 "빈(貧)의 효과"를 창출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이 경우 미국 경제는 장기침체로 향할 가능성마저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달러화 하락은 당장 해외자금 유출과 미국내 자산의 가치하락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의 회복국면을 이끄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달러화 하락은 미국 수출기업의 단가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국제시장에서 미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회복시킨다. 이로 인해 수출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수익과 생산량을 높여 국내총생산(GDP)증가로 직결된다.

실제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실질적으로 매출과 수익성이 좋아진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디트로이트 커머셜뱅크의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리트만은 "몇몇 기업의 경우 벌써부터 제품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엔이 단기적으로 115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메릴린치의 경우에도 올해 말에는 미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달러가 다시 엔과 유로에 대해 상대적인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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