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연비과장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대·기아차 소비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국내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연비의 정확성 문제에 대한 검증과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현대·기아차의 발빠른 사과와 보상조치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최근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경쟁사들의 견제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제기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내부적으로는 지난달 미국 연비과장 문제에 대한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고, 후속조치로 그룹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또 본사에 워싱턴포스트지 출신 글로벌 홍보담당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키며 해외홍보 역량을 강화했다. 지난 2일 언론에 연비과장 문제가 발표되자마자 미국 언론에 사과 광고와 보상책 제시 등 신속한 대응이 이뤄진 것도 사전에 대응책을 준비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오후 현대차 브라질공장 준공식 참석을 위해 출국한 정몽구 회장은 이번 연비 사태와 관련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는 현지 딜러들을 통해 고객이탈 조짐은 없는지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히 대응하자는 분위기이지만 파장이 미국은 물론 국내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는 올 초 2012년식 기아차 리오(프라이드)와 지난달 2013년식 현대차 엘란트라(아반떼)를 계약한 소비자 3명이 미국 연방 오하이오 남부지방법원에 연비 문제가 생긴 차종의 구매와 리스계약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서울YMCA가 현대·기아차 전 차종에 대해 연비를 사실과 다르게 표시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 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서울YMCA는 “단순 비교로도 같은 차종에 한국의 연비가 미국보다 20~30%나 높게 표기돼 있다”며 “국내가 북미보다 광범위하게 연비를 과대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현재 우리의 자동차 연비 측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비를 측정하는 주체가 해당 자동차 제조업체라는 것”이라며 자동차 연비 측정방식과 검증체계를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최근 언론 조사결과 국내 자동차 운전자의 69.4%가 표시연비와 체감연비 간의 괴리가 있다”며 “공인연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시장 판매량의 72%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연비 부풀리기는 국내 판매차량의 연비표시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연비를 과장한 것이 아니라 연비측정 방식이 한국과 다른 미국에서 규정을 잘못 적용하는 오류를 범해 이를 자발적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차량의 연비와 관련해선 국내 법규를 확실히 준수하고 있다”면서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는 표시연비와 체감연비의 격차는 내년 1월부터 새로운 복합연비를 적용하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차량의 연비 측정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고, 외부온도나 운전방식, 도로상태, 공기저항 등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서도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평균 400m의 오차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소비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기아차는 최근 북미지역에서 판매한 2011∼2013년형 모델 20개 차종 중 13종의 연비 하향조정 결정에 따라 미국 90만대와 캐나다 12만대를 포함해 총 102만대의 소유주에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보상금은 첫 해에는 1인당 평균 미화 88달러를, 이후에는 해당 차량의 보유기간까지 한해에 77달러를 각각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