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창균 기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산위에서 흙탕물이 밀려내려왔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주택 입구와 창문이 모두 진흙더미에 막혀버렸다"
평화롭던 전원마을이 지옥으로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장마도 끝났다는데 웬 비가 이렇게…` 풍광좋은 산자락에서 일상을 보내던 서울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들. 산사태와 함께 마을을 덮쳐오는 엄청난 토사류를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건 잠시였다. 흙탕물과 진흙더미속에서 목숨을 지키느라, 가족과 이웃을 구하느라 그들은 몇시간씩 수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27일 오후 찾아본 전원마을 산사태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우면산 곳곳에서 터진 산사태로 모두 16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 6명이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이었다. 동네 곳곳엔 쓰러진 나무와 흙더미에 파묻힌 차량 등 수마의 상처가 깊게 패어있었다. 주민들의 표정에선 절망감이 가득했다.
한 마을 주민은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우면산 정상에서부터 시작돼 중턱을 거치면서 세력을 확장한 토사류가 불과 수분만에 산아래 도로와 마을을 집어삼켰다는 얘기다.
산사태의 1차적 원인이 기록적 폭우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벌거숭이 민둥산도 아니고, 풍부한 숲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우면산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우면산 일대의 수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면산 생태공원 등산로 조성공사 과정에서 나무들을 많이 베어냈고, 이로 인해 산사태 방지 기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순한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가세함으로써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는 주장이다. 서울시와 구청은 기록적 폭우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평소 충분한 수방 태세를 갖추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참사를 겪고도 자연재해 탓으로만 이유를 돌린다면 제2, 제3의 전원마을 산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안전 대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우면산 개발 과정에서 수방대책에 소홀하거나 미비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를 겸허히 인정하고 시정(是正)하는 것이 시민을 위한 참된 시정(市政)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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