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인 서거정은 <학명루기>에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졌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홍천은 더 이상 깊고 궁벽한 곳이 아니다. 4차선으로 넓어진 44번 국도와 남북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홍천을 통과하고, 수도권과 동해안을 잇는 동서고속도로도 올해 개통 예정이다. 홍천에 들어서면 곳곳에 '새로운 변화, 생동하는 홍천'이라는 광고판이 서 있다.
동쪽 서쪽의 말과 기후가 다르다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한 홍천군은 전국 기조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의 3배 넓이이며 강원도의 10.7%에 달한다. 홍천은 동쪽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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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은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 땅이면서도 ‘근대화’ 바람은 가장 더디게 불었다. 그동안 홍천은 동해안으로 가는 통과 지점이었다. 주민들이 “동서 300리”라고 말하는 홍천은 지리상으로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같은 고장인데도 기후가 다르고 말이 다르다. 백두대간 험산준령에 기대고 사는 동쪽 사람들은 거센 영동지방 사투리를 쓰고, 서쪽 사람들은 부드러운 경기도 말씨에 더 가깝다. 동쪽과 서쪽의 표고차 때문에 기후도 5℃ 이상은 차이가 난다.
홍천은 고구려시대 벌력천현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녹효현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 홍천현이 됐다. 동쪽은 양양군과 강릉시, 서쪽은 가평·양평군, 남쪽은 횡성·평창군, 북쪽은 춘천시와 인제군에 각각 접한다. 서석면 검산리 미약골에서 발원해 홍천 중앙부를 지나 북한강 청평호로 흘러드는 홍천강은 예부터 홍천의 가장 큰 젖줄이자 영동과 영서를 잇는 수운(水運)의 요충지였다. 주민들은 “홍천강은 다른 지역의 물이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청정1급수”라고 자랑한다. 홍천읍을 중심으로 상류지역은 화양강, 하류지역은 홍천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홍천강은 북한강 수계에서 자연 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강이다. 수산, 반곡, 모곡, 마곡, 개야, 남노일 등 강촌마을 ‘유원지’들은 깨끗한 물에 풍성한 모래밭, 자갈밭이 있어 여름철 ‘강수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도시를 벗어나 잠깐 사이에 이런 강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우리 시대에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곳에도 곳곳에 대규모 펜션이 들어서고 있다.
홍천강변 서면 팔봉리에 솟은 팔봉산(327.4m)은 여덟 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팔봉산 제2봉에는 칠성당과 마을 서낭신인 홍씨, 이씨, 김씨 부인을 모시는 삼부인당(三婦人堂)이 있다. 이 당집에서 매년 음력 3월15일과 9월9일에 당굿을 한다. 400년 역사의 당굿을 보기 위해 무당과 무속연구가들이 모여든다.
보리울 마을에서 무궁화로 피어난 남궁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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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강 하류의 서면 모곡리 보리울 마을은 나라꽃인 무궁화의 성지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었던 한서 남궁억(1863-1939) 선생은 1918년 향리인 이 마을로 낙향해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짓고 교육에 힘쓰는 한편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퍼뜨리는 데 힘썼다. 1933년 체포됐다가 2년 뒤 병으로 석방됐지만 77세인 1939년에 사망했다.
보리울에는 한서기념관과 무궁화동산이 들어서고, 초기의 예배당이 복원돼 있다. 홍천군은 해마다 가을에 남궁억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한서문화제를 열고 있다. 홍천군의 캐릭터와 심벌마크도 무궁화 꽃을 형상화했다. 2008년 산림청에서 ‘무궁화 메카 도시’로 선정한 홍천군은 주요 도로변에 무궁화를 본격적으로 심을 계획이다.
홍천이 자랑하는 인물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최승희(1911-1967)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춤꾼인 최승희는 남면 제곡리 안말에서 태어났다. 최승희 춤 정신의 계승을 위해 해마다 최승희 춤축제를 연다.
불교문화가 살아숨쉰다
홍천군은 팔봉산과 함께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가칠봉 삼봉약수, 용소계곡, 살둔계곡을 ‘홍천9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서면 팔봉리에 들어선 대명비발디파크가 스키장을 비롯한 사계절복합레저휴양단지로 외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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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타사는 동면 덕치리 공작산(887m) 자락에 있다. 조선 세조 때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해 편찬한 <월인석보> 제17권, 18권이 사천왕상 복장유물로 발견되면서 유명해졌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17호)은 수타사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동종(보물 제11-3호), 홍우당부도(강원문화재자료 제15호), 후불탱화 등 수많은 문화재가 간직돼 있다. 월인석보 초간본은 수타사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있다.
홍천은 강원도 산간 지역 치고는 문화재가 많은 편이다. 홍천의 동부 지역인 내촌면 물걸리 절터에는 통일시대 시대의 삼층석탑(보물 제545호)이 서 있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대좌(보물 제543호), 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는 보호각 안에 보존돼 있다. 불교 미술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문화재들이다.
그러나 도로는 물론 진입로에도 안내판 하나 없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현재 보호각 보수공사중인데 관리인도 없이 공사가 중단돼 화재와 도난의 위험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사지와 샛길 하나로 경계를 지은 민가에서는 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입구에 마련된 화장실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물걸리사지는 답사객을 위한 편의시설은커녕 유적지로서의 면모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물걸리 동창마을은 3·1만세 운동 때 낫과 호미로 무장한 여덟명의 열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주독립을 외치던 곳이다. 이들 ‘팔열사’를 기리는 기미만세공원과 팔열중학교가 그곳에 있다.
홍천읍 사무소에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석탑인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과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이 옮겨져 있다. 이 보물들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읍사무소의 ‘정원석’ 노릇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홍천읍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역시 주택과 소음에 묻혀 있다.
청정성과 환경성에서 새길 찾는다.
화천면 말고개는 6·25전쟁 초기 밀물처럼 쳐들어오는 인민군의 탱크를 국군이 맨몸으로 막았던 현장이다. 북방면 화동리에는 부하가 실수로 중대원이 모여 있는 곳에 수류탄을 떨어트리자 자신의 몸을 던져 중대원 100여 명의 생명을 구한 강재구(1937-1965) 소령을 기리는 강재구공원이 있다.
홍천은 한때 12만 명의 인구로 시 승격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인구는 7만 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홍천은 지역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레저시설 확충, 공장유치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위주 정책은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최근 홍천에는 10여 개 이상의 골프장이 추진되고 있다. 골프장 예정지인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일원에서는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 서식지, 멸종위기 식물인 삼지구엽초 군락지가 발견됐다. 주민들은 골프장건설반대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반대집회를 여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홍천은 최근 들어 생명·건강산업도시를 미래 홍천의 테마로 홍보하고 있다. 농업군에서 탈피, 산업군으로 전환하는 시발점 역할을 생명·건강산업에서 찾겠다는 전략이다.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생명·건강과학관’을 개관했다. 생명·건강과학관은 4D영상관, 건강생활관, 생명관, 물관, 체험학습관 등을 갖추고 있다. 홍천읍 연봉리 일대를 생명·건강산업 연구단지로 지정하고 연구센터와 과학관 건립, 관련 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홍천 메디칼허브연구소, 서울대학교 시스템 면역의학연구소, 화진화장품 공장 및 연구소 등이 들어서게 된다.
홍천의 특산은 청정성과 환경성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다. ‘홍천강 수라쌀’ ‘늘푸름 홍천한우’ ‘홍천 찰옥수수’ ‘6년근 홍천 인삼’ ‘홍천잣’을 5대 명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축산분야 블루오션 사업으로 ‘늘푸름한우’와 ‘산우리흑돼지’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산우리 흙돼지는 전국 최초로 재래돼지 품종으로 인정받아 최근 한국종축개량협회로부터 재래돼지 ‘혈통등록증’을 교부받았다.
땅이 넓고 고을마다 환경이 다른 만큼 홍천의 특징을 한마디로 딱 집어내기는 어렵다. 궁벽한 은둔의 땅에서 접근성에 따른 환경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주민들은 서울∼양양간 동서고속도로 개통을 앞두고 개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실제로 수도권과 1시간 거리로 단축돼 인적·물적 교류의 증대로 지역 성장 동력의 한 축이 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의 온기와 푸른 산, 맑은 물을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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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
수도권에선 양평 지나는 44번 국도를 이용한다. 영남지방에선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홍천 나들목으로 접근한다. 충청·호남지방에선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춘천 방향)∼홍천 나들목을 거친다. 홍천강 하류의 모곡유원지, 팔봉산관광지 등으로 접근하려면 44번 국도 양평군 단월면 소재지에서 ‘대명비발디파크’ 이정표를 따라간다. 버스는 서울 상봉터미널(1시간 40분), 동서울터미널(1시간 50분)에서 출발한다.
연락처
홍천군 문화체육과 033-430-2358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033-434-2219
홍천군 경제관광과 033-430-2350,
팔봉산관리사무소 033-434-0813
맛집
홍천원조화로구이/44번국도를 타고 양평에서 홍천으로 가다 홍천읍 못미처에 양지말 화로숯불구이촌이 있다. 각종 야채와 토종벌꿀을 적당히 섞어서 만든 고추장 양념을 돼지고기와 더덕에 발라 2시간 정도 재워서 구워낸다. 033-435-8613
홍천강 민물매운탕/북방면 상화계리에 있다. 홍천강 유원지에는 매운탕을 하는 집들이 많다. 대부분 빠가사리, 꺽지, 메기, 모래무지, 피라미 등으로 매운탕을 끓여낸다. 033-435-8951
느티나무집/수타계곡 들머리에 있다. 매운탕 요리로 유명한 집이지만 강원도 전통 감자 옹심이를 잘한다. 033-436-6292
숙박
비발디파크/스키장, 콘도, 골프장 오션월드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033-434-8311
공작산휴양림/2002년에 개장한 사설 휴양림. 033-434-4987
홍천펜션협회/홍천강변 등지에 새로 지은 펜션이 많다. 016-812-0098
가리산휴양림/두촌면 천현리에 있는 자연휴양림. 홍천군에서 관리한다. 033-435-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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