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윤진섭기자] 판교신도시 개발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여당은 물론 정부도 경쟁적으로 `판교`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판교신도시 개발 방식을 둘러싼 주요 정책기조에서 일사 분란한 정책 조정과 추진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고 혼선마저 보이고 있어 `사공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각 부처간 각개 약진하는 모습도 노출되고 있어 시장이 가장 꺼리는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또 정작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판교개발 방식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주객이 바뀌었다`는 말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판교 둘러싸고, 재경부·열린우리당 경쟁적 이슈화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1일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판교 25.7평 초과 택지공급 보류는 중대형 평형 공급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발방식 변경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값 안정을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공영개발과 임대확대 등 다양한 방법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만약 주택공사 등 공공부문이 개발을 한다면 분양가가 공개되고 이익환수가 쉬운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과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판교신도시 25.7평 초과 택지 공급 보류를 직접 지시하고, 당·정·청이 판교신도시 개발을 포함한 향후 부동산 대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고 밝힌 시점에 나온 말이라 그 파장은 컸다.
한 부총리는 그 다음날인 22일 재경부 기자실에 들러 `판교가 공영개발될 경우 중대형 임대물량이 늘어나 일반분양되는 중대형은 줄어드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직은 모든 안을 놓고 검토중"이라며 다소 물러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 때문에 공공부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혀 하루 전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시사했다.
한 부총리의 발언 진의 여부를 떠나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 장관을 제치고 경제부총리가 판교개발 방식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거시경제를 책임져야할 한 부총리의 `판교 챙기기` 열의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재경부 외에 판교개발 논의에 가장 잰걸음을 보이고 있는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지난 20일 KBS 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고 있는 판교 신도시 공영 개발 방안에 대해 "우리가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열린우리당은 `부동산 종합대책 관련 대응 방안`이라는 내부 문건을 통해 `판교 로또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공영개발 추진을 당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하겠다`며 판교개발 논의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사공 너무 많다` 지적..정책 혼선 불거져
그러나 정부와 여권의 이같은 판교개발 올인 행보가 정책혼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1일 한덕수 부총리의 판교 공영개발 발언이 나오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아직 논의된 바 없다`며 너무 앞서간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부동산정책기획단 소속 열린우리당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은 22일 "아직 당정간 고위협의가 한번도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판교 공영개발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받아쳤다.
정 위원장은 "공영개발로 전환할 경우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전혀 논의된 바 없고 앞으로 전문가들과 정부, 당의 의견을 모아 논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내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정부대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고 당에서도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흘러 나간 것 같다”면서도 “이런 식이라면 당정간의 협의할 이유가 있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 역시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의 `공영개발은 우리가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것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일각의 `한덕수 부총리 오버런`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판교 문제를 떠나 이같은 혼선과 부동산과 관련한 각개 약진 발언은 연초 서울공항 개발론이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한덕수 부총리는 수도권에 집 지을 곳이 아직 많다며 서울공항 등 서울 주변 개발 가능성을 언급, 땅값을 들썩이게 했다. 김한길 수도권발전대책위원장도 한 부총리에 앞서 서울공항 개발을 주장했었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됐고, 논의가 없었다`라며 서둘러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땅값은 큰 폭으로 뛰고난 뒤의 사후약방문이었다. 판교 발언이 각 부처별로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서울공항 못지않다.
당장 한 부총리가 공영개발을 언급하면서, 각 건설업체는 단순 도급 업체로 전락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따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고, 중형아파트가 임대아파트로 전환될 경우 사실상 청약기회가 상실되는 청약예금 대상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됐다`며 반발 조짐마저 일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부총리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산적한 경제 현안을 제쳐두고 판교에만 연일 관심 쓰는 게 마치 다들 건교부 장관 같다` 라는 비야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민적 관심사인 판교신도시의 경우 털끝만큼의 정보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불쏘시개 같은 존재여서, 그 어느 때보다 정책 담당자들의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부총리가 경제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판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십분 이해되는 대목이지만, 내부 조율조차 시작되지 않은 사안을 언론에 언급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처신"이라며 "특히 `재정경제부 장관인지, 건설교통부 장관인지`라는 시중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