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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재벌 좋아한다…경제력 집중 부작용이 문제"

김상윤 기자I 2019.03.13 10:00:00

세르비아 정부 요청으로 경쟁정책워크숍 기조연설
韓 벤치마킹 세르비아에 김상조 “재벌은 명과 암 존재”
세브비아 경쟁당국 수장 “공기업 민영화, 불공정행위 잡아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국제경쟁정책 워크숍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베오그라드(세르비아)=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나는 재벌을 좋아합니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벌에는 좋은 면이 있는 동시에 나쁜 면도 있습니다.”

유럽(EU) 순방 중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국제경쟁정책 워크숍에서 한국 재벌에 대해 언급했다. ‘재벌은 소중한 자산’이라는 문구는 늘 꺼내던 표현이다. 그는 ‘재벌을 좋아한다’면서도 동시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비판했다. 1989년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낯선땅인 세르비아에서 재벌론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을까?

◇한국 닮고 싶은 세르비아…김상조 “재벌은 명과 암 존재”

세르비아는 구(舊) 유고연방의 수도였다. 유고연방은 1992년 연방해체를 시작으로 현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코스보 등 7개의 소국으로 분리됐다. 세르비아 인구는 718만명,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7221달러로 세계 86위에 불과한 작은나라다. 내전 등 지역분쟁과 정치불안이 경제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여전히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과거 내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경제부흥을 위한 실용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 EU 가입 목표도 세워놨다. 대부분 공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생태계가 꾸려진 세르비아는 2001년부터는 공기업의 민영화 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장 경쟁을 촉진시키고 공기업 부패를 줄이면서 글로벌 시장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에서다.

김 위원장의 기조 강연은 세르비아 정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세르비아 정부는 한국 기업과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키우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독과점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고 있지만 마땅한 묘책은 없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 재벌이 한국 경제가 빠르게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정부가 재벌 중심의 수출 중심 전략을 짰던 것은 후발국 입장에서 주효했던 전략이라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1960년대부터 한국은 정부 주도로 수출 중심 경제성장전략을 추구한 것은 한국 경제 성공의 핵심적 요인이었다”면서 “성공적인 기업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 투자했고 결국 한국의 기적을 이끌어 냈다. 이는 단순하지만 인센티브 원리에 부합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같은 성장 전략도 명(明)만 있는 게 아니라 암(暗)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재벌은 해외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국내에서는 자원 집중으로 인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 권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모든 권력은 잘못 이용될 여지를 갖고 있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종교, 언론, 이데올로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르비아 정부도 한국과 같은 성장 모델을 따를 수 있지만, 자국내 독점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공산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있는 세르비아 상황을 감안해 “민주주의 사회는 경제력의 집중을 민주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규범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는다면, 경쟁당국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밀로에 오르라도비치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장이 양자협의를 갖은 후 악수를 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세브비아 경쟁당국 수장 “공기업 민영화, 불공정행위 잡아야”

세르비아에는 한국 공정위처럼 경쟁 촉진 역할을 하는 경쟁보호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탑클래스 수준으로 꼽히는 한국 공정위가 좋은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세르비아 정부는 과기정통부의 주파수 경매 시스템 관련 기술 지원도 받는 등 한국 정부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밀로에 오브라도비치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장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세르비아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해 경쟁당국을 만들었다”면서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고 공공입찰 담합 행위를 잡기 위해 한국 공정위 행정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르비아는 역사적으로 (내전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공기업의 민영화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 내더라도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점에 대한 감시 권한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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