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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이승엽, 초반 9경기가 중요하다

오마이뉴스 기자I 2006.03.30 14:40:43

[심층분석] ''개막전 4번 타자'' 의미와 올시즌 전망

[오마이뉴스 제공]
1928년 뉴욕 양키스에는 두 명의 야구 전설이 함께 뛰고 있었다. 3번 타자로 활약했던 사내의 이름은 조지 허먼 루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내를 '베이브(Babe)' 라 불렀고 더러의 이탈리안들은 살가운 발음으로 '밤비노(Bambino)라고 했다. 그 뒤에서 4번을 치던 사내의 이름은 명문 콜롬비아 대학 출신의 루 게릭. 당시 '살인타선(Murderer's Row)'의 핵심이던 두 사내는 정작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베이브 루스는 늘 루 게릭을 애송이 취급했고 기자들 앞에서 루 게릭이 자신의 업적을 능가하려면 지구의 자전이 멈췄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큰소리 쳤다. 참을성 있는 루 게릭은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잊었어요? 이 팀의 4번 타자는 바로 나란 말입니다."야구에서 4번 타자는 전통적인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다. 요즘들어 팀의 간판 타자들이 3번을 치는 일이 잦아졌지만 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4번 타자야말로 팀의 간판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 야구도 마찬가지여서 장타 능력과 타점 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이 주로 4번을 맡았다. 물론 인기도 좋아서 야구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은 늘 '4번 타자' 였다.19년만의 요미우리 개막전 외국인 4번 타자 이승엽
▲ 요미우리 개막전 4번 타자 이승엽
ⓒ 요미우리 자이언츠
국내 언론은 요미우리 곤도 아키히토 수석코치의 말을 인용해 이승엽이 31일 요코하마와의 개막전에서 4번 타자로 출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난 25일 일제히 보도했다. 요미우리 구단 사상 역대 개막전에서 4번 타자를 맡은 외국인 선수는 로이 화이트(1981년)와 워렌 크로마티(1987년)가 전부였으며 따라서 이승엽이 개막전 4번 타자로 나선다면 19년만의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센트럴리그에서 새 출발을 하는 이승엽이나 그를 사랑하는 모든 팬에게는 좋은 뉴스였다. 당초 6번이나 7번 타자 내정설이 파다했던 까닭에 4번이라면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국내 언론에서 19년만의 일이라고 언급한 '요미우리 개막전 외국인 4번 타자가 어떤 의미냐' 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정리한 기록과 일본 평론가들, 그리고 여러가지 정황을 토대로 이를 분석해 본다.

개막전 외국인 4번 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회용 이벤트인가?

곤도 수석코치가 언급한 로이 화이트와 워렌 크로마티는 1980~90년 사이 요미우리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다.주1)

화이트는 레드 카펫을 밟을 만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연간 120경기 이상을 출전하며 팀 기여도가 높았다.

크로마티는 센트럴리그 MVP(1989년)이자 요미우리 사상 최고 타율(.378)을 기록한 선수였고, 1986년 타격 삼관왕 랜디 바스(당시 한신)와 치열한 개인 타이틀 경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했다.

두 선수 모두 입단 첫해에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화이트는 팀내 수위타자(.284) 였고 크로마티는 35 홈런, 93 타점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데뷔 당시 요미우리 타선은 침체 중이었고 이들이 시즌 내내 타선을 이끌었다.

먼저 첫번째 답은 나왔다. 요미우리가 이승엽에게 앞선 화이트와 크로마티 정도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침체된 요미우리 타선을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요미우리는 주포들의 부상으로 정상적인 전력을 기대하려면 4월 중순이 지나야 한다.

침체한 요미우리 타선을 이끄는 중책. 시즌 후반까지 이어질 전망

지난해 요미우리에서 가장 많은 홈런(34)홈런과 타점(87)을 기록했던 고쿠보 히로키와 '미스터 요미우리' 다카하시 요시노부는 부상으로 시범경기에 거의 결장했고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다. 포수 아베 신노스케 역시 부상으로 시달린 바 있어 아직 조심스럽다. 부상을 걱정하지 않을 주포는 이승엽이 유일하다.

설령 이들이 회복해도 이승엽은 4,5번 타순을 지킬 전망이다. 지난해 요미우리는 홈런 186개, 득점617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4년 홈런 259개, 득점 719에 비해 턱없이 떨어진 수치다. 필요할 때 때려주는가하면 홈런 능력도 갖춘 거포가 절실하다.

"올해 하라 감독이 '스몰볼'을 주창했습니다. 투수진은 그렇다 치고 타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다카하시는 중거리 타자로 변신할 전망이고 아베는 포수로 앉아 있는 동안 홈런 25개 이상을 기대하기 무리입니다. 고쿠보도 나이와 부상 경력으로 봐 올해 하향세일 전망이니 '스몰볼'에 무게를 둬야할 것입니다.그래도 타점을 올리고 공세적 한방을 쳐줄 주포가 필요한데 이승엽이 적격이라고 봅니다"

일본 야구 평론가 츠지모토 데츠야의 전망이다.

시즌 초반 요미우리 돌풍의 중심이 돼라

곤도 수석코치가 이승엽의 4번 중용설을 언급한 두번째 이유는 시즌 초반 팀의 운명을 걸겠다는 하라 감독의 의중과 지난해 요미우리 타선이 올 개막전 상대인 요코하마에게 좋지 않은 성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요미우리는 마무리 댄 미셀리가 개막전부터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며 시즌 초반 연패에 시달렸고 이것이 빌미가 돼 줄곧 하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하라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시즌 목표를 초반 기선 제압이라 공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개막전 엔트리에 12명(11명으로 변경)의 투수를 준비했을 정도로 시즌 초반 기선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난해 요코하마를 상대로 3할 이상을 친 타자(7경기 이상)는 시미즈 다카유키와 다카하시 요시노부, 터피 로즈(방출), 모도키 다이스케(은퇴) 뿐이다. 아베 신노스케는 병살타를 4개나 치며 요코하마와 악연을 맺었다.

이승엽은 지난해 요코하마와의 교류전(인터리그)에서 20타수 8안타 4할의 타율에 홈런 3개(우투수 2개, 좌투수 1개)를 쳤는데 이런 기록이 시즌 초반부터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하라 감독의 의중에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요미우리 영입 1루수, 대체로 성공적

마지막 이유는 1990년 이후 요미우리로 이적한 1루수들은 대개 초반 성적이 좋았고 나름대로 평균 이상의 시즌을 보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요미우리 코칭스태프가 이승엽 카드를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주2)

요미우리는 개막일인 오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요코하마, 야쿠르트, 주니치를 상대로 각각 3연전을 벌인다. 하라 감독은 요코하마와 야쿠르트는 반드시 이기고 올 시즌 우승후보인 주니치에게는 2승 1패를 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그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도 없다. 시나리오의 성공 여부는 새로 구축한 투수진과 이승엽을 비롯한 중심 타선에 달려 있다.

현지 평론가들은 도요타 키요시(세이부에서 이적)와 제레미 파웰(오릭스에서 이적) 노구치 시게키(주니치에서 이적) 등이 합류한 투수진에는 합격점을 주고 있다. 그러나 타선에는 여전히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투수진에 비해 타선이 약하다는 평가다.

소수의 평론가들은 요미우리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시즌 중이라도 선수 보강 준비를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시즌 초반 요미우리 타선이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물갈이를 할 수 있고 이승엽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하라 감독은 이승엽의 팀내 라이벌인 조 딜런이 '스몰볼' 에 능숙한 타자라며 칭찬한 바 있고 고쿠보의 1루수 전향도 고려한 적이 있어 이승엽에게는 초반 9경기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이승엽의 초반 부진이 4월 21일부터 열릴 라이벌 한신 타이거즈와의 3연전까지 이어진다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해진다. 한신전은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어 이승엽이 부진할 경우 요미우리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반대로 이승엽이 시즌 초반 중간 정도의 활약만 보여도 시즌 후반부까지 평탄하리란 전망이다. 일본에는 이승엽만한 1루수가 적은 까닭이다.

요미우리가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요미우리는 지난 몇년 간 중남미와 미국 선수에게 보기 좋게 '배신' 당한 전력이 있다. 변수는 고쿠보와 아베의 포지션 전향이다.

일본 평론가들은 이승엽이 시즌 초반 부담을 덜고 최악의 성적만 보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출장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승엽이 극복해야 할 문제들

이승엽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경기장 안팎으로 매우 많다. 첫번째가 요미우리만의 독특한 배타성이다.

요미우리는 프랜차이즈 선수와 영입 선수, 일본인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대하는 친절함에 차이가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 선수들은 낙담과 실망으로 시즌을 그냥 보내고 만다. 단, 이것이 부진의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또 요미우리 극성 팬과 '댈러스 모닝뉴스'를 넘어서는 극성 언론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게다가 일본의 황색 언론에는 '할리우드'도 부러워하는 수준급 파파라치가 많아 사생활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파파라치 스트레스로 고생한 요미우리 선수들이 많다.

경기에서는 센트럴리그의 투수력이다. 이승엽이 처음 보는 수준급 투수들이 많다. 컨트롤은 퍼시픽리그보다 전통적으로 센트럴리그가 앞선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에서 이시이가 던진 높은 슬라이더가 얼마나 위험한지 센트럴리그의 투수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투수들에 대한 밑그림을 처음부터 그려야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승엽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바 롯데에서 이승엽은 하위 타선에 있었기에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지바 롯데가 일본 야구의 변두리라면 요미우리는 그 중심이고, 게다가 4번 타자다.

꾸준히 발전하는 이승엽, 시즌 전망은 낙관적

WBC에서 이승엽이 보여준 놀라운 모습은 이미 지난해 일본시리즈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지만 여기에 근력과 경험이 더해져 더 좋은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이승엽은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장타에 필요한 근육을 충분히 발달시켰다. 과거 삼성 시절보다 허벅지와 팔뚝이 눈에 띄게 굵어졌다. 더구나 근육을 불리면서도 유연성 역시 좋아졌다. 이승엽이 WBC에서 터뜨린 홈런은 힘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허리와 튼튼한 허벅지,그리고 강한 손목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2년간의 일본 야구 경험도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공을 몸에 가깝게 붙여 놓고 타격하는 게 눈에 띈다. 또 상대 투수의 공을 예측하고 타격하는 '게스 배팅' 능력도 좋아졌다. WBC 중국전을 제외한 3개(일본, 미국, 멕시코전)의 홈런은 모두가 정확한 예측이 적중한 것이었다. 일본 투수들과 상대하며 익힌 수싸움으로 짐작한다.

현재 일본 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의 올해 예상 성적을 타율.270, 35홈런, 85타점 정도로 예상하며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승엽이 소속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오는 31일 오후 6시 도쿄돔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개막전을 벌인다.


주1) 로이 화이트: 3년간(1980~82년) 활약.홈런 54개, 평균 타율 .283. 워렌 크로마티:7년간(1984~90년) 활약.홈런 171개,558 타점, 평균 타율 .321. 주2) 역대 요미우리 영입 1루수 데뷔 첫해 성적. 1994년 주니치에서 요미우리로 이적한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129 경기에 출장해 125안타, 타율 .280, 15 홈런, 68타점을 기록했으며 그해 팀은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97년 세이부에서 요미우리로 옮긴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130경기에 출장해 115 안타와 타율 .249, 32홈런, 95타점을 기록했는데 팀의 기대치에 걸맞은 성적이었다. 또 2003년 요미우리로 이적한 로베르토 페타지니는 100경기에 출장해 107안타 타율 .323 타율(규정타석 미달), 34 홈런 81 타점을 기록했다. 야쿠르트 때보다는 떨어지는 성적이었지만 적시타를 때리는 능력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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