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중앙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 용역’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24일 공개했다. 49억6000만원 규모의 이 사업은 7월 기술평가, 협상 등을 거쳐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 후 8월 중 모의실험 연구에 착수, 내년 6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네이버파이낸셜과 언체인 컨소시엄, 카카오페이와 그라운드X 컨소시엄, LG CNG와 신한은행 컨소시엄, 포스텍 크립토블록 체인연구센터와 하나은행 컨소시엄 등이 입찰 참여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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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참가자들은 한은이 설계한 CBDC 모의실험 환경을 가상공간인 클라우드에 구현하게 된다. 한은이 구축한 모의실험 환경은 중앙은행인 한은이 CBDC를 제조, 발행, 환수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은행, 빅테크 등 민간이 이를 유통하는, 현재의 현금 유통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한은이 한국조폐공사를 통해 현금을 발행하는 대신 한은이 네트워크가 단절된 안전한 컴퓨터 환경에서 CBDC를 제조하고 발행 전까지 하드웨어 전자지갑에 보관하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은행 등의 참가기관이 CBDC 발행을 요청하면 한은이 참가기관의 거액결제용 전자지갑(거액결제시스템과 연계)으로 CBDC를 전송해 발행하고 또 CBDC를 한은에 반환할 수도 있다. 현금이 발행됐다가 환수되는 방식 그대로다.
이때 분산원장 기술이 활용, CBDC 원장을 기록·관리하는 서버(노드)가 한은 뿐 아니라 민간 참가기관 모두에게 생성된다. 단일 원장은 보안에 취약하기 때문에 분산원장 기술을 채택키로 한 것이다. 현재의 거액결제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곳은 은행뿐이지만 CBDC가 실제 발행될 경우엔 한은이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에도 허용, 이들에게 거액결제용 전자지갑을 발급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분산원장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기관을 (은행으로만)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 밖에 은행, 빅테크, 핀테크 등 민간기관을 통해 개인, 기업 등으로 CBDC가 유통되는 방식은 기존 현금 흐름과 똑같이 구현될 예정이다.
◇ “현금 이용 비중 대폭 줄면 그때서야 CBDC 도입 가능”
한은은 1단계로 올 연말까지 CBDC의 제조·발행·환수, 참가기관의 거액결제용 지갑관리 등 발권시스템을 비롯해 기업, 개인 등 이용자의 전자지갑 관리, 기존 예금과의 CBDC 교환, 송금 및 대금 결제 등 기본적인 현금 유통 과정 등을 실험할 예정이다. 이후엔 2단계로 CBDC 실험을 확장해 국가간 송금, 디지털 예술품 및 저작권 구매, 오프라인 결제, 법 집행에 따른 압류 채무자의 CBDC 동결, 압류채권자의 전자지갑으로의 CBDC 이전, 개인정보 차단(PETs) 기술 활용 등의 실험을 진행한다.
한은은 모의실험을 통해 중앙은행의 CBDC 제조·발행·환수 등, 참가기관의 유통 업무(이용자의 전자지갑 관리 등) 등 전체 단위 업무를 적절하게 처리하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참가기관, 이용자 수가 증가하거나 부가 기능이 추가되더라도 결제 속도 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 한은의 CBDC 플랫폼 기술과 관련해선 ‘오픈소스’로 열어두고 민간이 자신의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한은은 이번 모의실험이 CBDC의 도입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모의실험은 CBDC 도입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현금 비중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선 CBDC가 도입될 수 밖에 없겠지만 그게 언제일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현금 이용 비중은 건수와 금액 기준으로 각각 26.4%(2019년 기준), 17.4%로 다른 나라 대비 높은 편이다. 한은은 모의실험이 끝난 후에도 실제 사용 케이스를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