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감세논쟁)⑤쏟아지는 감세안이 미덥지 않은 이유

김성재 기자I 2008.08.06 16:42:10

정부, 몇달전까지 ''감세반대'' 근거 조목조목
과세 현실 그대로인데 정권 바뀌니 무차별적''감세''
부작용 우려에도 중구난방式 감세..''선심성''의혹

[이데일리 김성재기자]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세당국은 ‘세금은 시민권에 대한 연회비’라고 홍보하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두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도 있다.

한나라당이 최근 연일 감세론을 쏟아냈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 재산세, 종부세 등 거의 전 종목에 걸쳐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방안이다. 꼭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도 감세에 적극적이다.

무거운 세금에 억눌려 살았다고 생각해온 국민과 기업들에게 더할 수 없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감세론에 적극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혼란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사상 유례없는 부가세 환급에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왜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정부의 감세 주장에 선뜻 신뢰를 주지 못하는 걸까?

◆ 뒤집힌 정부 논리..몇달 전 감세반대 명분 다 어디갔나?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가 감세를 추진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된 방향이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 감세에 반대하며 내세운 6개월전 정부의 논리와 근거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해명이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까지 정부는 감세에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2005년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한덕수 전 장관은 "감세정책이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세입기반을 항구적으로 잠식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내놨다.

또 감세가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가처분 소득증가가 저축으로 흡수되면 소비진작을 통한 경제활성화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하다며 감세 반대론을 폈다.

우리나라 조세부담이 그리 높지 않은 점,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의 문제에 대비해 세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점도 감세반대론의 근거였다.

실제로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가운데 53.9%(2004년치)만이 소득세를 내고, 자영업자 중 52.5%만이 종합소득세를 낸다. 전체 근로소득세의 80%정도를 상위소득자 10%가 부담하고 있으며, 자영업자의 경우도 종합소득세의 90%이상을 상위 10%가 내고 있다.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절반은 한푼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근로자· 자영업자 등 서민·,중산층의 조세부담이 크지 않아 감세를 해도 이들에게 별 혜택이 없다는 논리다.

외국과의 조세부담률 비교치도 감세 반대의 근거로 활용됐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국세+지방세/경상GDP)은 20.4%(2003년)인데 비해 OECD평균은 26.8%다. 세금보다 국채발행으로 미래세대에 조세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의 미국(18.8%),일본(15.6%)보다 높지만, 영국(29%), 독일(21%), 프랑스(27%)보다는 여전히 낮은 편이어서 감세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과세체계나 부담수준이 변한 것도 아니고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해소된 것도 아닌데, 정부가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이 불과 몇개월 전 제시한 감세반대론을 뒤집는 모습에 국민들은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 정부가 조세정책 기조를 ‘작은정부’에 맞춰 바꾼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당시 감세에 반대했던 이유가 해소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없이 반대정책을 쏟아내는 데에 혼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당·정 '딴소리'도..무차별적 감세안에 포퓰리즘 냄새 '풀풀'

여당과 정부가 감세안을 한꺼번에 마구 쏟아내는 이유와 목적에도 의구심이 일고 있다.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서,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의 ‘선심성’ 정책추진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나라당과 새 정부가 감세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우선 '경제 침체' 때문이다. 경기가 안좋으니 감세를 통해 기업투자를 활성하고 국민들의 소비진작을 통해 경기를 살려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취지는 물론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미국 일본 등 외국의 사례에서 감세를 통한 고용창출 효과가 적고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편중되어 소비확대와 경기부양 효과가 적었다는 점도 지적된다. .

재정건전성 훼손이라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크다. 재정건전성은 감세의 효과를 떠나서도 조세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정부출연 국책연구소인 한국조세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서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정부에서 조세정책이 도입되면 재정수지가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리한 감세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감세’ 가 누구를 위한 감세인지, 무엇을 위한 감세인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당초 한나라당과 정부는 법인세와 재산세, 소득세를 깎아주는 법안을 추진했다. 고유가, 고물가 등으로 경기침체가 깊어지니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얼마 후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를 들고 나왔다. 종부세 등 완화는 누가 봐도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다. 여론이 좋지 않자 이번에는 서민·중산층을 보호하겠다며 부가가치세 환급을 제시했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놓은 일부 감세안에 대해 정부의 경제정책 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조차 ‘검토되고 있지 않은 정책’이라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주초 발표된 한나라당의 부가가치세 환급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당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내놓은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정부와 협의나 조율없이 감세안을 쏟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세금은 세목에 따라 줄일 수도 강화할 수도 있지만 (한나라당과 정부는) 종부세 완화에 집착하다 이를 위장하려고 부가세 등 다른 세금의 감세안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재정건전성 훼손 우려에도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 감세를 내놓는 것은 선심성 전략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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