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철우기자] 며칠 전 이데일리 SPN 야구 명예기자로 활동중인 황규인씨는 '이젠 추억을 팔아보자'는 기사를 썼다. 롯데가 지난 주말에 개최한 'Again 1992' 이벤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팬의 입장에서 현역 선수들이 92년 우승 당시 멤버들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을 담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그동안 구단과 팬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괴리가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팬들은 향수를 자극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추억 만들기'를 원해왔지만 구단 운영은 여기에 박자를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기자는 몇해 전 비슷한 이벤트를 모 구단에 제안한 바 있다.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구단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안된다. 이전 이미지를 지워야 하는 마당에 옛 유니폼을 입게할 수는 없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모기업 홍보가 최우선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룹 이미지 제고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 프로야구단이 이젠 모기업과 연관없는 로고를 달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를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봤을땐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는 마인드다. 단순히 한차례의 이벤트에 그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상품가치를 고려한다면 매우 1차원적인 생각일 뿐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추억의 유니폼 행사가 잦다. 그냥 하루 입고 마는 팬 서비스용이 절대 아니다. 그 유니폼을 팬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남기기 위함이다.
물론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 시장성에서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구단들은 시작도 해보지 않고 방치해둔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몇 구단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정식 유니폼을 제작,판매한 바 있다. 약 7만원선의 제작비만 받고 제작업체를 연계해주기만 한 사실상 대행 업무였다.
구단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대부분 200~300장 정도의 주문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롯데는 더했다. 무려 4,000여장의 신청이 몰렸다. 제작업체의 일손이 부족해 나머지 구단의 주문 제작이 미뤄졌을 정도의 파워가 있었다.
현재 KBOP를 통해 생산,판매되고 있는 유니폼은 모양만 본 뜬 모조품이다. 정식 유니폼의 절반 가격이면 구입할 수 있지만 호응도는 매우 낮다.
"절반 가격에도 안 사는데 비싼 정식 유니폼을 사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황규인씨의 지적처럼 팬들은 그동안 동대문 의류 도매상등을 통해 직접 자신들이 원하는 유니폼을 제작해 입고다녔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하고 디자인까지 직접 전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지만 그만큼 목이 말라 있었기에 직접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다.
여전히 시장성에 대한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도 해보지 않고 시장의 규모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일단 시작을 해야 넓히던 줄이던 할 것이 아닌가.
여기에 추억을 가공해 판매한다면 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롯데의 이벤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연극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연극인은 "요즘 벤처기업 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위해선 적과도 동침할 수 있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연극인들은 어떤가. 먹고 살기도 힘들면서 서로 잘났다며 싸움질만 하고 있다"고 개탄했었다.
우리 프로야구는 어떤가. 그룹 CI가 바뀌어서,또는 현재 아무런 연고가 없는 기업이어서 등등 팬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길에 장애물들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되는 걸 먼저 생각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프로는 돈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나친 상업주의는 비판받아야겠지만 아직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는 우리 프로야구에선 사치스러운 얘기다.
한국프로야구는 2007년을 기점으로 다시 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각 구단들이 나름 애를 쓰고 있는 것들이 조그만 결실로 다가온 느낌이다.
밤 잠을 줄여가며 고생하는 프런트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 팬과 구단의 눈높이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는 걸 전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