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영효기자] 최근 네이버 인기 검색어에 `서브프라임`이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 용어가 `신용경색` 우려를 낳으며 국내외 주식시장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서브프라임이 뭐길래`라는 생각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신용경색 위기가 국내외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요. 국제부 정영효 기자가 최근 시장상황을 알기 쉽게 풀어보겠답니다.
국내 주식투자자들은 요즘 `서브프라임`이란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금융지식에 해박하지 않은 일반인들로서는 서브프라임이 뭐길래 이렇게 시장을 흔들고, 내 주식을 망가뜨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2000선을 넘었던 코스피가 눈깜짝할 새 1850아래로 밀린 걸 보면 국제 금융시장에 뭔가 사단이 난 것 같긴 합니다. `왜 맞는지 알고라도 맞으면 덜 아플텐데 황당하다`고 푸념하는 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3대 중앙은행들이 천문학적 유동성을 쏟아부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니, 개미들은 영문도 모른채 속이 타들어갈 만도 한데요. 정말 국제 금융시장은 신용경색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그리고 신용위기를 촉발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먼저 신용경색부터 살펴보죠. 현재 상황을 엄밀히 보자면 국제 금융시장이 `신용경색`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상황이 악화될 경우 경색으로 치달을 위험을 안고 있는 임계수위에 다달았다는 게 적합한 표현입니다. `유동성 경색`, 아주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금융권 단기자금 수급의 일시적 차질`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여기서 신용경색과 유동성 경색의 차이를 잠시 설명드릴 필요가 있겠네요. 신용경색과 유동성 경색은 둘 다 시장에서 돈줄이 막힌다는 점에서는 얼핏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주체나 파장 측면에서 보자면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신용경색은 IMF 금융위기나 대우사태 때처럼 기업들이 신용도에 관계없이 자금시장에서 돈을 구하지 못해 망가지기 직전의 상황을 말합니다.
아무리 신용도가 좋다고 해도 신용경색 하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 급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흑자도산 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든 카드대란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카드채는 신용도에 관계없이 모조리 부실취급을 받았습니다. 투자자들은 돈을 빼내 가기 급급했고, 은행들은 추가 자금지원을 거부하면서 시장전체가 휘청거렸습니다.
이에 반해 유동성 경색은 은행 등 금융권 내부의 자금수급 애로와 연관돼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펀드와 금융기관으로 전염되면서 불안감을 느낀 시장 참여자들이 자금 거래 자체를 꺼린다는 것이죠. 시발은 서브프라임이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이어 유럽 대형 은행인 BNP파리바로 전염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들이 투자자 환매를 중단하자 시장에서는 대형 기관들이 환매를 못해줄 만큼 서브프라임 부실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펀드에 투자했다가 돈을 못찾게 될 기관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단기자금 융통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콜시장에서 하루짜리 단기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펼치면서 사용하는 수단이 콜금리인데, 이 금리가 중앙은행이 정한 목표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시장을 통제할 수단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중앙은행의 신뢰 상실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동안 서브프라임 충격은 제한적이라며 시장 다독이기에 열중하던 중앙은행들도 `이건 아닌데`라며 시장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3대 중앙은행이 수백조원대의 유동성을 공급했는데, 이는 서브프라임이나 헤지펀드의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돈을 못빌려 높은 금리를 주고서라도 콜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기관들에게 중앙은행이 정한 목표 금리대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 것이죠. 이번에 투입된 만큼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찔끔찔끔 유동성을 지원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수 있으니 돈을 풀 때 확 풀어줘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도 있었을 겁니다. 이 자금은 계속 풀어두는 게 아니라 대부분 하루내지 사흘 후에는 중앙은행이 다시 거둬들일 돈입니다.
중앙은행들이 이처럼 자금시장에 돈을 퍼부은 것이 9.11 이후 최대규모라는 점에서 시장이나 언론은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는 서브프라임이나 신용경색과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자금수급에 차질이 생긴 만큼 시장 매커니즘에 따라 중앙은행이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규모가 컸다는 게 서브프라임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셈이죠.
금융시장이 자본주의의 혈액인 돈의 흐름에 곧잘 비유된다는 점에서 신용경색이 동맥경화라면 유동성 경색은 심장박동에 문제가 생겨 피가 구석구석을 제대로 돌지 못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상황이 신용경색으로 발전할 우려는 상존합니다. 기업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회사채나 주식이 신용도에 상관없이 전혀 소화되지 않고, 기존 대출자금 만기도 연장하지 못해 나자빠질 기업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신용채권과 주식시장 일부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아직 본격화된 상황은 아닌 듯 합니다.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신용위기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단순히 대출부실로만 생각했던 서브프라임 사태가 그동안 권역과 국경을 불문하고 확산돼 왔고, 이를 방치할 경우 금융과 실물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차원일 겁니다.
서브프라임의 본질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서브프라임은 말 그대로 신용도가 `우수`(prime)하지 못한, 혹은 등급이 이보다 낮은(sub)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 대출입니다. 부실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은 모기지 업체들이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신용도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줬고, 감독기관도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발생한 카드사태와 비슷한데요. 당시 카드사들은 길거리 영업을 통해 소득, 상환 가능성을 불문하고 신용카드를 발급해줘 부실화를 자초했습니다. 부실화된 메커니즘은 두 경우가 서로 비슷합니다. 사글세방에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이들도 신용카드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부유층 못잖은 소비를 했죠. 대출기관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모기지를 받은 미국인들은 주택경기가 좋았던 시절, 이를 활용해 주택이라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는 과분한 소비를 영위해왔습니다.
하지만 호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죠. 주택시장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원리금 연체는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모기지를 담보로 한 파생금융상품의 발달은 원리금을 갚지 못해 발생하는 부실 위험을 다양한 금융기관으로 전염시켰습니다. 모기지 부실은 각종 펀드와 금융기관들의 손실로 이어졌고, 이로 인한 시장 불안감 확산되자 최근에는 `고해성사`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손실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걸 더 불안해 하는게 시장심리이기 때문에 차라리 손실을 정확히 공개하자는 것이죠.
고해성사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실규모가 공개되고 나면 일시적으로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리스크에 따라 가격이 차별화되고, 이에 따라 시장의 수급기능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하더라도 이로 인해 촉발된 유동성 경색이 신용대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배경에는 시장의 자율적 회복 메커니즘에 대한 기대도 깔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