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미국 동부 연안의 관광 명소 중에 로드 아일랜드라는 곳이 있다.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는 커다란 저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정문에서 현관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야하는, 영화 속에 나오는 성같은 저택들이다.
그 중에 `Breakers`라는 독특한 이름의 저택이 있다. 파도가 와서 하얗게 부서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기둥과 발코니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방도 수십개에 달한다. 천평도 넘을 것 같은 넓은 정원은 파란 잔디로 덮여 있고, 그 끝에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있다. 이 저택의 주인은 19세기말 미국의 철도 재벌이었다고 한다.
관광 가이드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미국 초창기 부자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 1세대부터 3대에 걸쳐 상상을 초월할 수 없는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이 저택의 주인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에는 대농장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철도 회사까지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3대 이후 후손들부터는 돈을 물쓰듯 쓰게되고, 집안도 몰락하게 됩니다."
한세대를 30년이라고 한다면 100년을 못간다는 뜻이 된다. 브레이커즈의 후손들도 나중에는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저택 자체를 지역사회에 기부 해버렸다. 관광객들의 입장료가 없다면 고대 유적처럼 버려질 처지가 된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브레이커즈와 같은 길을 걸어간 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다. 브레이커즈의 주인이 운영했다는 철도 회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다우존스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에서도 그 같은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은 다우존스지수 자체가 미국 자본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굿바이 AT&T
지난 1일 다우 지수를 산출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부터 30개 구성 종목 중 3종목을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대신 새로운 종목 3개를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다우 종목은 뉴욕 주식시장의 `핵심 블루칩`을 상징하는 만큼 종목 변경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했다.
탈락 종목은 AT&T, 인터내셔날페이퍼, 이스트만코닥이었고 신규 편입 종목은 버라이존, AIG, 화이자였다.
AT&T는 1916년 다우에 편입된 현존하는 미국 최고(崔古)의 전화회사다. `코닥필름`으로 유명한 이스트만코닥역시 1930년이후 지금까지 다우 종목에 들어있었다. 제지 그룹인 인터내셔날페이퍼는 1956년 처음으로 다우에 편입됐다.
다우 구성 종목은 기업간의 합병, 파산 등의 이유로 부정기적으로 교체돼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매우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구성 종목을 수시로 교체했다. 다우 지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 종목 선정도 월스트리트저널이 임의로 할 수 있다.
이번 종목 교체에 대해서도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주식시장의 트렌드를 반영, 금융과 헬스케어 업종의 성장과 기초 원자재 업종의 퇴조를 반영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인 AIG와 제약사인 화이자가 편입된 이유와 인터내셔날페이퍼를 제외한 이유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AT&T와 이스트만코닥의 탈락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월가는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스트만코닥은 지난해 기존의 필름 사업 부문을 완전히 정리하고 디지털 프린터, 디지털 사진 용지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필름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코닥은 어느새 시가 총액이 73억달러에도 못미치는 중소형주로 전락해 있었다. `대형 블루칩 리그`인 다우에서의 퇴출은 시간 문제였다.
AT&T의 퇴장은 더욱 극적이다. AT&T의 시가총액은 153억달러. AT&T를 대신해 다우에 들어온 전화회사 버라이존의 시가총액은 1042억달러다.
AT&T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당할 자가 없는 막강 통신기업이었다. 전화기를 발명한 벨이 설립한 전화의 역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AT&T는 그러나 1984년 정부와의 반독점 전쟁에서 패하면서 몇개의 지역 전화회사로 강제 분할됐다. 이때부터 본체였던 AT&T는 `Ma Bell(엄마 전화회사)`, 떨어져 나온 지역 전화회사들은 `Baby Bells(꼬마 벨)`로 불렸다.
`꼬마 벨` 중 하나가 바로 버라이존이다. 버라이존보다 앞서 1999년 다우 종목에 들어간 SBC커뮤니케이션즈도 AT&T에서 분화된 꼬마 벨 멤버다. 결국 꼬마 벨들이 엄마 회사를 퇴장시킨 셈이다.
AT&T의 퇴장도 코닥처럼 예견된 것이었다. AT&T는 사세가 기울면서 주요 사업 부문을 잇따라 매각, 지금은 평범한 지역 전화회사 중 하나로 전락했다. AT&T가 가지고 있던 전국적인 케이블 방송망은 컴캐스트에 팔아버렸고, 얼마 전에는 이동통신 자회사(AT&T와이어리스)도 입찰 형식으로 매각했다.
반면 버라이존은 유무선 전화, 인터넷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미국 최대의 통신기업이다. 기업의 규모로 볼 때 버라이존의 다우 종목 편입은 다소 늦어진 감이 없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때때로 다우 지수를 너무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 받고 있다. 다우 지수는 `대형 블루칩`이라는 울타리를 고수해왔기 때문에 1896년 탄생한 이후 1999년까지는 오직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종목만을 편입 대상으로 삼았다. 나스닥에 들어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1999년에야 겨우 다우 종목에 들어갔다.
이같은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다우는 "현재 미국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 기업들"의 주가를 보여주는 벤치마크다.
◇찰스 다우
다우 지수는 1896년 한 창의적인 저널리스트에 의해서 고안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 창간자 중 하나인 찰스 다우가 그 주인공이다.
다우는 1851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글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18세에 `Springfield Daily Republican`이라는 지방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얻은 다우는 당대 최고의 신문 편집인 중 하나인 조지 다니엘슨이 이끄는 `The Providence Journal`로 옮겨 본격적인 기자 훈련을 받는다. 다우는 이때 지역 역사와 금융, 부동산 투자와 같은 독특한 취재 영역을 개발했다.
베테랑 기자로 성장한 다우는 뉴욕으로 진출, `Kiernan News Agency`에서 활동했으며 1882년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버그스트리저와 함께 `다우존스앤코(Dow Jones & Co)`라는 신문사를 설립한다.
1883년 다우는 `Customer"s Afternoon Letter`라고 하는 2쪽짜리 신문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 신문이 바로 월스트리트저널의 원형이다.
`레터`는 월가에 거의 혁명적인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주식투자는 `야바위` 노름이나 마찬가지였다. 거래되는 주식의 주가조차 정기적으로 공표되지 않을 때였다. 기업들은 기업 사냥꾼을 피하기 위해 회계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았다.
`레터`는 정기적으로 주식시세표를 실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연간 재무 정보도 제공했다. 다우는 반 사기꾼이나 마찬가지인 주식 거래인들 사이의 패쇄적인 정보를 기사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의미의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레터`를 통하지 않고서는 일반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회계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다우가 만든 `월스트리트저널`은 1934년 증권거래법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회계 정보를 공개하게 될 때까지 이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이름 그대로 월스트리트의 `저널`이었던 것이다.
◇다우 지수의 탄생
다우는 1884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철도회사 주식 12개를 골라, 이들의 평균 주가를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주가지수`라는 개념은 지금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지금 주식시장이 활황이냐, 침체장이냐"를 가늠할 기준조차 없었다.
훗날 다우는 주가지수의 개념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어떤 사람이 조류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 사람은 만조와 간조를 알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바닷가에 긴 막대를 꽂고 물이 최고로 올라왔을 때와 최저로 내려 갔을 때를 표시하면 될 것이다. 밀물과 썰물을 관찰하는 이런 방식이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을 표시하는 긴 막대가 바로 주가지수다. 다우가 최초로 만든 지수는 철도회사로만 구성돼 있었다. 당시는 철도회사가 최첨단 기업이었고, 주식 거래도 가장 활발했다.
다우는 1986년 5월26일 철도회사를 포함한 당시 미국 산업의 최고 우량주(Bellwether) 12개를 골라서 본격적인 `다우 평균 지수`를 만들었다. 이 지수는 12개 회사의 주가를 합해서 12로 나눈, 그야말로 평균(average) 주가였다. 최초의 다우 지수는 40.94였다.
이 때 편입 종목은 철도회사를 비롯, 설탕, 가죽, 담배, 가스 생산 기업들이 막라돼 있다. 다우는 1902년 51세로 죽을 때까지 시장 상황에 따라 수차례 지수 편입 종목을 바꿨다.
다우 지수는 1916년 20개 종목으로 늘어났고, 1928년부터 30개 종목으로 고정됐다. 다우 지수는 산업의 변화, 경제 발전, 시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종목을 변경했다. 최초 지수의 핵심이었던 철도 회사는 오늘날 다우 종목에는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유일한게 원년 맴버로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제너랄일렉트릭(GE)이다.
GE도 1896년 이후 두차례 종목에서 퇴출된 경험이 있다. 1898년 9월 GE는 US러버라는 고무회사와 교체된다. GE는 1899년 4월 다시 다우 종목에 편입된다.
GE는 1901년 4월에도 다우에서 빠졌다가, 1907년 11월7일 재등장, 지금까지 다우 종목으로 남아있다.
다우 지수의 역사적 저점은 1896년 8월8일 기록한 28.48이다. 다우 지수가 만들어지고 나서 3개월 동안 하락세가 계속된 것이다.
다우의 역사적 고점은 2000년 1월14일 기록한 1만1722.98이다.
다우 지수의 일일 최대 낙폭 기록은 2001년 9월17일 684.81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이날 다우는 8920.70으로 끝났다. 911테러로 휴장했던 주식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다.
반대로 일일 최대 상승 기록은 2000년 3월16일 499.19포인트 오른 것이다. 이날 다우는 1만630.60을 기록했다.
◇다우 지수의 한계
다우 지수는 순수하게 주식가격으로만 산출되는 지표다. 최초의 다우 지수가 편입 종목의 주가를 모두 합해서 편입 종목 수로 나눈, 평균 주식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다우 지수는 주가로만 산출된다.
오늘날 다우 지수는 주식 액면 분할과 종목 교체 등을 감안한, 별도의 계수(divisor)로 구성 종목 주가의 합을 나누는 방식으로 구한다.
S&P이나 러셀 지수는 시가총액을 고려한 지수다. 현재 월가에서는 다우 지수를 상징적인 지표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식시장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때는 S&P 지수가 더 많이 인용된다.
다우 지수의 상징성은 그 역사와 `핵심 블루칩`이라는 구성 종목의 특성에서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99년에 가서야 MS를 다우 종목에 편입시켰다.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을 받지 않으면 다우 종목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우 종목이 우량주 전체를 대표하는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네트워크 대장주인 시스코는 시가총액이 1630억달러로 시가총액 10대 기업에 드는 대형 기술주임에도 다우 종목이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역시 미국 최대의 은행 중 하나로 시가총액 10위안에 들지만 다우 리스트에는 없다.
거침없는 M&A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미디어업계의 새로운 강자, 컴캐스트나 휴렛팩커드와 자웅을 겨루고 있는 델도 다우 종목은 아니다.
다우 종목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반드시 기업 가치에 손상을 입거나, 다우 종목에 새로 편입됐다고 해서 기업 가치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1999년 이후 다우 지수는 지금까지 3% 가량 하락했다. 이해에 다우 종목이 된 홈디포는 같은 기간 26% 하락했다. 인텔은 30%, MS는 46% 하락했다. SBC역시 52%나 떨어졌다.
새롭게 `핵심 우량주` 대열에 합류한 4개 기업이 다우 지수 전체의 하락률을 앞지르고 있다.
반면 1999년 다우에서 쫓겨난(?) 백화점 업체 시어스는 52.4%나 상승했다.
다우 종목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다우 지수의 역사를 보면, `영광의 기록`을 3대 이상 끊이지 않고 이어간 기업이 전무하다. 원년 멤버인 GE의 경우도 2번 탈락했었다. 100년후 MS가 다우 종목에 남아 있을까.
성을 쌓는 것보다 성을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