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레이를 타보고 나온 한 마디. 전기차 공유 업체 ‘한카(HanCar)’ 관계자는 담담히 대답했다. 많이 듣는 질문인 듯 했다.
“전기차는 소리가 안납니다. 계기판에 ‘READY(준비)’라는 단어가 떠 있으시죠? 시동이 걸린 상태입니다. 사이드브레이크를 푸시고 천천히 나오시면 됩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자동변속기의 모드를 ‘R(후진)’으로 놓았다. 자동차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차 밖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지나갈 때 나오는 진동이 지면을 타고 차안까지 들어왔지만 전기차는 조용했다. 엔진 소음은 커녕 진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시동을 걸자마자 ‘쿠르릉’ 소리를 내던 경유차와는 분명 달랐다.
변속기를 ‘D(운행)’로 놓자 차는 전면을 향해 움직였다. 전기차는 소리없이 도로 위에 올랐다.
2호선 당산역을 지나 양화대교에 진입했다. 엑셀레이터를 밟자 별다른 진동음 없이 시속 70km에 다다랐다. 불과 5초에서 6초 사이였다. 급가속 면에서는 옆 차들을 앞섰다. 차 바깥에 써져 있는 ‘EV’라는 표시가 없다면 누구도 전기차라는 점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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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2동에 있는 공중전화부스 앞 전기차를 운전해봤다. 이 공중전화부스는 KT가 전기차 충전소로 시범사업을 하는 곳이다. 지난해 1월 KT는 서울시내 3곳의 공중전화 부스에 전기자동차 충전기와 커넥터(플러그)를 설치했다. 공중전화 부스를 전기차 충전소로 활용하기 위한 시범사업이다.
KT는 자동차 쉐어링 업체 ‘한카’와 협력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있는 KT와 전기차가 있는 한카 모두 ‘윈윈(상호이익)’인 선택이었다.
당산동 공중전화 부스 전기차 충전소는 차로변이 아닌 아파트단지 담벼락 바로 옆에 있다. 거주자 우선 주차 지역이다. KT는 이곳 공중전화부스 옆에 주차 지역 하나를 마련하고 전기차 충전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원래 있던 공중전화 자리에 차량 주차 공간만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의 추가 공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충전에 필요한 배선 시설도 부스 옆 전봇대에서 바로 따올 수 있다. 공간 확보와 전력 인프라 구축에서 공중전화 부스는 이점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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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한카 등 차량 공유 업체들은 각 사용자들의 T머니 카드로 사용자 인증을 한다. 따라서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T머니카드 일련번호에 신용카드 정보 등을 등록해야 한다. ‘그린카’처럼 직접 회원카드를 발부하는 경우도 있다.
차량 내부의 키를 키박스에 꽂고 시동을 걸었다. 키를 돌리자 카오디오와 에어콘 바람이 나왔다. 하지만 ‘탈탈탈탈’ 하는 자동차 ‘제너레이터(발전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반 가솔린·경유 자동차의 엔진 소리에 익숙한 운전자는 당혹스러울 상황이다.
키박스에 꽂힌 키를 수 차례 돌려봤다. 시동이 걸린 줄도 모르고 계속 돌린 셈이다. 결국 한카 직원과의 통화후 출발할 수 있었다. 전기차의 가장 큰 특징은 저소음이었다.
서울 당산동에서 출발해 명동을 거쳐 홍제동을 지난 다음 다시 당산동으로 오기까지 약 30km를 달렸다. 처음 완충 상태에서 배터리 잔량은 4칸이 빠졌다. 21개 칸중 4칸이다.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완충 상태에서 최고 150km까지는 주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단순 계산으로는 전기차 레이의 최대 주행거리 120km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다만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날씨다. 23일은 서울시내 최고 온도가 29도였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평소보다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짧아진다고 한다. 전기차 레이의 공식 연비는 kwh 당 5km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공중전화 부스가 대안중 하나
전기차 레이의 도심 지역 운행은 무리가 없었다. 집이나 아파트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가 마련돼 있다면 출퇴근 용으로 충분히 쓸 수 있었다.
문제는 완충 시 주행거리와 충전 인프라다. 전기차 레이의 100~150km 정도의 주행 거리를 갖고 고속도로까지 운행하기에는 무리였다. 충전소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다만 주행거리는 배터리 기술의 발달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나온 전기차 상용모델은 일반 자동차를 따라 잡은 상태다. 대표적인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모델 S 70D의 최대 주행거리는 410km에 달한다.
충전 인프라도 개선은 되고 있다. 주차장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결합시키는 사업모델도 일부 나오고 있지만 상용화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이런 부분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소 모델은 현실성이 높다. 전기선과 통신선이 연결된 공간이다보니 차량을 세울 공간만 있으면 손쉽게 충전소로 꾸밀 수 있다.
인프라도 풍부하다. 전국 공중전화 부스 숫자는 2만9000개 정도다. 주차 공간이 없더라도 전기 오토바이 혹은 전기 자전거의 충전소로도 활용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이같은 KT의 장점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홍주 KT링커스 공중전화사업본부 분부장은 “공중전화 부스에 대한 공공적 가치를 정부뿐만 아니라 자동차 공유 업체, 전기차 업체들도 주목하고 있다”며 “전기차가 확대되면 공중전화부스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