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니 이제 웬만한 섹스장난감 종류는 손으로 잡고 진동만 느껴 보아도 느낌이 온다. 몸과 접촉하는 면적이 얼마나 큰지, 소재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떤 형태의 곡선으로 마무리돼 있으며 진동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면 대략 그 토이가 가져다줄 감각을 어림잡을 수 있다.
물론 오르가즘은 매번 다르고, 그 순간만큼은 더없이 즐겁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객관적인 제품 평가를 위해 ‘절정에 다다를 준비’를 하는 게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엔 예상 가능한 오르가즘보다 한 시간 더 자는 것이 절실해 기기 충전을 하며 졸다 스르르 곯아떨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라이선스 패션지의 기자가 취재차 연락을 해왔다. 지금 서구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섹스토이, ‘우머나이저(womanizer)’를 아느냐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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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개. 생애 최고의 오르가즘”, “이 섹스토이만을 위한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하다”, “섹스토이 계의 혁신. 이런 말은 10년에 한 번 할 수 있는 말이다”
궁금한 마음에 설명과 사용 후기를 꼼꼼히 읽었다. 보아하니 우머나이저는 흡입(suction)을 이용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토이였다. 지금까지는 클리토리스에 직접 진동기나 섹스토이를 갖다 대 자극하는 것으로 오르가즘을 이끌어 냈다면, 우머나이저는 오로지 공기압으로 빨아들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또 제조사가 20~60대 사이의 50명의 여성에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절반의 여성이 1분 이하의 시간에 절정을 느꼈으며, 75%의 여성이 멀티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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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미로운 쾌감에 휩싸였던 프루스트 소설의 주인공에 비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경험은 자연스레 처음 오르가즘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내 몸인데도 내가 제어할 수 없이 달아오르던 기억. 발끝, 종아리, 아랫배에 잔뜩 힘을 준 채, 눈을 꼭 감고 알 수 없는 격동에 온전히 내맡기던 순간 말이다. 그때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렇게 숨은 느낌이 있고, 그걸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훌륭한 섹스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봤다. 멋진 식사를 할 때 음식을 씹고 삼키며 식도를 넘어가는 그 느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근사한 섹스는 혼자서건, 파트너와 함께 건 오로지 그 순간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 아직 새로운 감각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집중의 미덕을 독일에서 날아온 반전 매력의 섹스토이가 상기시켜 준 것이다. 아, 생각해보니 이 기기의 특징이 ‘흡입력’이구나.
사실 우머나이저는 섹스토이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제품은 아니다. 적어도 5분 이상은 공을 들여야 느낄 수 있는 것을 마치 스포츠처럼 1분 안으로 단축해버렸으니, 역설적으로 섹스의 재미를 빼앗아 갈 수 있다. 이 긴 글을 통해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처럼 오랫동안 섹스토이를 접하고 사용해온 사람들에게도 느낌을 일깨워주는 토이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물린 성생활 루틴에 질렸거나, 조금 색다른 체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성인용품의 세계는 무한한 감각의 바다나 다름없다. 인내심을 갖고, 섹스토이 탐험에 나서보자. 다시, 뜨거운 오르가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