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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보다 비싼 경유…"하반기까지 이어질 수도"

경계영 기자I 2022.05.12 10:52:08

경유 1947원>휘발유 1946원 '14년 만'
EU, 경유 의존도 높은데 러시아서 수입↓
경유재고, 8년 내 최저…배급제까지 거론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 여력…당분간 상승"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경유가 휘발유보다 저렴하다는 상식이 깨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유를 중심으로 석유제품 수급난이 심해지면서 14년 만에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면서다.

1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1일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947.59원으로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 ℓ당 1946.11원을 추월했다.

국내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것은 2008년 6월 이후 14년 만이다. 통상 국내 주유소에서의 경유 판매가격은 휘발유 판매가격보다 ℓ당 200원가량 저렴했다.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이후 이달 초까지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 7일 반등한 후 일 평균 2.9원 오른 데 비해 경유 가격은 같은 기간 하루 평균 6.7원 올랐다. 상승 전환 시점도 지난 4일로 더 빨랐다. 특히 이날 오전 기준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950.8원으로 전날보다 3.2원 오르며 지난 2008년 7월16일 기록한 최고치 1947.75원을 넘어섰다.

유류세 인하 폭이 30%로 확대된 지난 1일 서울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1970원, 경유 1998원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경유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컸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기준 전체 육상운송용 연료 판매량 4분의 3이 경유일 정도로 경유를 많이 쓰는 지역이다. 승용차 역시 40% 이상이 디젤(경유) 차량이다. 이들은 경유 상당수를 러시아에서 들여왔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며 경유 수입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EU의 러시아산 석유제품 수입 비중은 27%, 자동차용 경유 수입 비중은 20% 수준이었다.

러시아산 경유의 빈자리를 다른 국가의 경유가 메우면서 미국·유럽·아시아 내 경유 재고는 8년 내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FT) 상품 컨퍼런스에서 세계 3대 상품 중개업체인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가 “모두가 우려하는 석유제품은 경유”라며 “최악의 경우 유럽이 연료 배급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고 볼 정도로 경유 수급난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

유럽에서 경유 수급이 빡빡해지자 국제 경유 가격도 큰 폭으로 뛰었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국제 경유 가격은 배럴당 162.27달러로 휘발유 가격 137.36달러보다 24.91달러 높았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연동돼 국내 주유소의 경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뿐 아니라 지난 1일부터 적용된 정부의 유류세 인하 폭 확대도 휘발유와 경유 가격 차이를 더욱 벌렸다. 석유제품 간 상대가격비를 정해 이 비율을 맞추려 유류세를 석유제품마다 다르게 부과한다. 휘발유와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비율은 100대 85대 50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로 확대하면서 휘발유 유류세는 ℓ당 746원에서 500원으로 246원이 내렸고, 경유 유류세는 ℓ당 529원에서 355원으로 174원이 인하됐다. 정률 인하이다 보니 경유 유류세의 인하 폭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었다.

경유 수급난은 하반기까지 지속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정유 4사만 보더라도 정기 보수를 실시하는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하면 SK이노베이션(096770)·GS칼텍스·에쓰오일(S-OIL(010950)) 모두 정제설비(CDU) 가동률이 95% 안팎에 이른다.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정제설비가 완전(full) 가동 중인 데다 탈탄소 압력이 거세 정제설비 증설도 부족하다”며 “이에 비해 수요는 천연가스 대체 발전 수요와 상품 가격 강세에 따른 농업용 트랙터를 비롯한 상용차 관련 수요 등으로 경기 침체만 없다면 견조할 것으로 보여 경유 부족 현상이 길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항공 수요가 회복되는 점 역시 경유 가격엔 악재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을 생산하는데 항공유에 쓰이는 등유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경유 생산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항공 수요가 줄다 보니 정유사는 그간 경유를 최대한으로 늘려 생산했지만 이제 늘어날 항공유 수요에 대응하고자 경유 대신 항공유 생산을 늘릴 수 있다”며 “겨울엔 난방유로 등유로 사용하는 국가가 많아 하반기로 갈수록 경유 가격 상승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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