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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에 앞서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 쌍방의 입증 계획을 듣고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추리는 사전 절차로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지만, 현재 구속 수감 중인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은 이날 각각 옥색과 쑥색 수의를 입고 직접 법정에 얼굴을 비췄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 중 박 구청장만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이 전 서장 등 5인에 대한 준비기일에서 피고인 측에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 여부를 물었지만, 이들은 모두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이 전 서장 등은 모두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이날 재판부가 “(피고인들이) 제출한 기본적 의견서를 보면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부인하는 입장”이라며 “도의적이고 행정적 책임을 떠나서 형사 책임까지 가는 것에 대한 법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허위 공문서 작성에 대해선 사실 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자, 이 전 서장의 변호인 등 피고인 측은 모두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지난해 10월 핼러윈 축제 기간 당시 경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안전 대책 보고에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고,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등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 등을 받는다. 특히 이 전 서장은 그간 주장과 달리 사고 발생 당일인 지난 10월29일 오후 8시30분부터 관용차에서 대기하며 무전기를 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검찰은 핼러윈 인파 대비를 위해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는 이 전 서장의 주장도 허위로 판단했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늦장 대응을 한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송 전 실장은 참사 당시 현장 경찰 책임자로서 지휘 및 보고를 소홀히 하고, 112 신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 등을 받는다.
재판부는 이어진 박 구청장 등 4인에 대한 준비기일에서도 피고인 측에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물었지만 모두 거부 의사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박 구청장 입장에 대해 “인과 관계 관련성과 구체적 주의 의무가 제시되지 않았고 예견 가능성이나 회피 가능성이 없다는 점, 상해에 대한 피해자와 다투는 부분이 있다”면서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와 관련해서는 보도자료가 나간다는 것만 알았고, 보도자료 결재권자가 아니며 내용 자체도 몰랐다는 것”이라고 정리하자, 변호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박 구청장은 재난·안전 관련 1차적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사고 당일 사상자 발생 이후 재난대응에 필요한 긴급지시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부적절한 대응 이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구청 직원을 통해 사고 현장 도착시간과 재난 대응 내용 등에 관한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배포한 혐의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이태원 사고 희생자들의 유가족 일부도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재판부가 잠시 발언할 기회를 주자, 고(故) 이지한씨 모친은 “길 가다가 경찰 도움 없이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압사당해 숨도 못 쉬고 죽은 부모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살인”이라며 “판사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초점 맞춰서 정확하게 판단해 엄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서장 등 경찰 관계자 5인에 대한 다음 재판(2차 공판준비기일)은 내달 10일,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인은 다음달 17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