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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리더-24] '상상 캔버스' 채울 준비 됐나요

오현주 기자I 2012.09.27 14:55:47

표미선 한국화랑협회 회장
"나이·출신에 주눅 들지마
재능·창의·실행력이 중요"
"미술작품 전시장에 걸리듯
미래 이끌 무한책임 가져야"

표미선 한국화랑협회 회장(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미술계에 최근 큰 행사가 마무리됐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다. 세계 20개 나라에서 181개 갤러리가 모여 거대한 장터를 꾸렸다. KIAF는 아시아 최대 미술품 거래시장이다. 걸고 세운 작품만 5000여점. 매매가로 1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7~8% 늘어났다.

미술계에 요즘 첨예한 이슈가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미술품 양도세 부과 논란이다. 화랑 대표와 작가 등 정적인 미술세계에 빠져 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거리시위까지 감행했다. 경기불황에 직격탄을 맞은 미술시장에 양도세까지 얹힐 경우 ‘고사’는 불 보듯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이 굵직한 사안들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가 있다. 표미선(63) 한국화랑협회 회장이다. 지난 19일 서울 경운동에 위치한 한국화랑협회에서 만난 그는 에너지 넘치는 외형에 걸맞은 뚜렷한 주관으로 미술계를 진단했다.

미술계는 불황이다

KIAF는 한국화랑협회가 매해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다. 가나아트갤러리,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선화랑, 아트사이드갤러리, 예화랑, 학고재갤러리 등 이름만으로도 시장을 움직이는 대다수 화랑들이 출품작을 낸다. “행사장인 코엑스에 입장하는 데만 300m 줄을 서는 성황을 이뤘다. 시장의 불황과는 상관없이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그림으로라도 위로를 받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내 화랑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 작품들이 많이 팔렸다.”

표 회장은 그러나 성공적인 개최를 이뤄낸 안도감에만 빠져 있기엔 마음이 무겁다. 장기화 국면에 들어선 미술계의 위축 탓이다. “예년과 비슷한 규모다. 지난해에 130억원 정도였다. 문제는 이 자체가 상당히 축소된 규모란 거다. 2007년에는 27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중국 투자자들이 자국서 투자처를 잃고 한국작품에 눈돌렸던 때다.” 하지만 이후 미술시장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단지 국내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위기 여파가 컸다.

국내 미술시장은 4000억원 규모. 그나마 요즘은 반토막이다. 애꿎은 ‘두부’ 탓을 할 생각은 없지만 표 회장은 두부시장 8000억원 규모와의 비교도 서슴지 않았다.

“양도세로 미술시장 죽이자는 거냐

요즘 미술계는 동요하고 있다. 시행 석 달여를 남긴 양도세 논란 때문이다.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사고팔 때 생기는 차익에 과세하겠다는 정부에 팽팽히 맞선 미술계는 단체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예술가로 불리는 그들로선 참으로 낯선 모습이다. 그만큼 미술계 공멸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 지점에선 표 회장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 흔들리면 정부는 바로 부양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미술시장을 정부는 지원은커녕 세금으로 바짝 말리려 든다.”

양도세는 6000만원 이상 미술품을 대상으로 한다. 차익의 20%를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표 회장은 탈세·편법을 막자는 정부의 취지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 시장은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세 실효성이 미미하다. 세수라 해봤자 20~30억원인데 이 때문에 화랑이 문을 닫고 작가가 거리로 내몰릴 형국 아니냐. 되레 미술시장을 음성화시킬 가능성까지 있다.”

한국화랑협회엔 140개 갤러리들이 회원사로 있다. 국내서 내로라하는 화랑들이다. 이들의 입장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표 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표미선 한국화랑협회 회장(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30년 내다보고 치고 나가야 한다

표 회장은 2009년 한국화랑협회 회장으로 선임돼 3년 임기를 마친 후 올해 연임했다. 그에게 또 다른 직함도 있다. 표갤러리 대표다. 32살이던 1981년 문을 열어 30여년을 지켜냈다. 표방한 것은 ‘반구상’. 그의 행보는 초창기부터 뚜렷했다. 고미술이 화랑가를 휩쓸고 ‘진경산수’에 푹 빠져있던 사회분위기 위에 혁신적인 반구상 작품들을 던지기 시작한 거다. 국내엔 생소하던 아이티 미술전을 여는 파격을 내보이기도 했다. “시대적으로 앞선 그림을 감상하고 또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껏 가지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여기서 도드라진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힘, 창의력이다. 굳이 남녀를 가릴 일도 아니다. 머리 좋은 똑똑한 청년들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미래 비전을 꿸 수 있다는 거다. 쓴소리도 매섭다. “기획서를 검토하다 10년 전 안을 꺼내 단어만 바꾼 경우까지 봤다. 이래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 수익모델을 찾는 데는 10년 앞도 짧다. 30년은 내다보고 치고 나가야 한다.”

미술은 소통…사람도 다르지 않아

“정말 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끌어가는 능력은 여성이 우위다. 남성보다 강한 힘을 낸다.” 굳이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자면 말이다. 여성이야말로 접근성과 추진력 둘 다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여성 자신이 스스로를 옥죄는 울타리에 먼저 들어설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가령 나이니 출신배경 같은 잣대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어떤 사고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가 그의 지론이다. 젊은 여성들을 향한 특별한 조언도 덧붙였다.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경험으로 체득하는 책임이 사는 일의 동력이 돼야 한다.”

표 회장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전시는 소통이다’다. 미술을 일방적인 통로로 여기는 건 착각이란 말이다. 작품은 누군가 앞에 서는 순간 무한책임이 생긴다. 사람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 표미선 회장은…

1949년 대구생. 영남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염색·디자인·서양화·조각 등을 아우르는 작품활동을 하다가 1981년 표갤러리를 개관했다. 1988년 외무부 후원으로 당시로선 드문 ‘아이티 회화’ 전을 열어 화제가 됐다. 1989년부터 한국화랑협회 재무이사·국제담당이사·총무이사·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2009년부터 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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