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욱기자] 하이닉스반도체의 대만 기술이전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기술유출이냐 기술수출이냐를 놓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수장들이 다른 의견을 내놓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모습입니다. 산업부 김상욱 기자는 기술유출 여부를 떠나 아쉬운 부분이 많다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죠.
세계 D램업계 2위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000660)가 제휴관계인 대만 프로모스에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일부에서는 벌써 기술유출이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하이닉스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기술유출이 아니고 기술수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아무래도 후자보다 전자에 눈길이 가는게 사실이니까요.
때문에 7일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은 단호한 어조로 "만일 기술이 유출된다고 생각되면 내가 스스로 중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핵심기술이 아닌 양산기술을 이전하는 것이고, 실제 이전도 빨라야 1년후에나 가능한 만큼 기술유출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하이닉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세계 1위업체인 삼성전자(005930) 황창규 사장이 하이닉스의 기술이전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날 모처럼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황창규 사장은 "핵심기술이 수출대상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정부의 심의과정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입장도 시사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반도체산업의 상생과 협력을 위해 존재하는 협회의 공식행사에서 한국 반도체를 대표하는 두 수장이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반도체업계를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도 어느 한편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쪽의 설명도 맞는 측면이 있고 다른 쪽의 설명도 맞는 측면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다만 같은 한국기업들끼리 이처럼 다투는 모습을 보고 있을 다른 해외 경쟁업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앞서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지금 반도체업계, 특히 한국업체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업계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격하락으로 후발업체들은 실적악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후발업체들간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은 국적을 떠나 서로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얼마전 미국의 마이크론과 대만의 난야가 제휴를 체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일본의 엘피다도 기존 제휴선인 파워칩 외에 하이닉스와 제휴관계인 프로모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이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이처럼 해외업체들은 너도나도 우군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D램업계 세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서로의 손을 잡는 것에 대해 너무 인색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독자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하이닉스는 대만 프로모스와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같은 한국업체들끼리는 교류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같은 흐름은 과거부터 이어져왔고 당분간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실제 지난해말 삼성전자가 일본 도시바에게 독자제품인 원낸드(OneNAND)와 플렉스 원낸드 (Flex-OneNAND) 라이센스를 제공한 후 하이닉스측에선 아쉽다는 반응을 감추지 않더군요. 삼성전자는 이 라이센스를 ST마이크로와 도시바에게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시 하이닉스 고위관계자는 "만일 삼성전자가 우리에게도 라이센스를 제공했다면 한국업체들이 새로운 시장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는 해외업체는 가능해도 하이닉스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국가적차원에서 보면 손해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황창규 사장의 발언 이후 일각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사석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삼성전자가 대만 파워칩만 어떻게 해주면 의외로 교통정리가 쉽게될 것 같다"고 말이죠.
삼성전자가 파워칩을 인수하거나 제휴관계로 묶을 수 있다면 기존 파워칩의 제휴선인 일본 엘피다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진다는 의미였습니다. 미국 마이크론은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죠.
삼성전자와 파워칩, 하이닉스와 프로모스의 제휴구도가 형성되고, 삼성과 하이닉스가 지금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간다면 사실상 D램업계는 한국업체들이 완벽하게 지배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 관계자의 시나리오였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어요?"라며 웃고 넘겼지만 오늘같은 상황을 보고 나니 더욱 아쉬워지는게 사실입니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지배하는 반도체시장', 제가 너무 무리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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