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을 지낸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22일 0시22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열로 입원했다가 상태가 악화됐고,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서거했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전했다.
서울대병원 측이 밝힌 공식 사인은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이다. 향년 88세.
김 전 대통령의 삶은 말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현대사의 거인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로 민주화투쟁의 최전선에 섰고,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최초로 문민시대를 열어 젖혔으며, 임기 말에는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부르기도 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최연소(27세) 국회의원, 9선 국회의원, 3번의 야당 총수, 문민정부 대통령 등을 역임했다.
특히 임기 초 전광석화처럼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것은 우리나라 전반의 시스템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9단’ 김 전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던 개혁이라는 시각도 많다.
김 전 대통령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필생의 라이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둘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관계”로 불렸을 정도로 뗴려야 뗄 수 없었다. 민주화 투쟁 때는 한마음으로 손을 맞잡은 ‘동지’였지만 권력을 앞에 두고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맞수’였다.
이로써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3김’ 중 김종필 전 국무총리(JP)만 남게 됐다. 사실상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한 페이지가 넘어가게 된 것이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이날 하루종일 조문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김영삼 대통령 기념사업회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상도동계 인사들은 차남인 현철씨(고려대 교수)와 함께 상주를 자처했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서거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도 긴급기사로 “30여년에 걸친 군정(軍政)을 종식한 첫 대통령”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인물” 등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國家葬) 형식으로 치르기로 했다. 장지는 현충원, 발인은 26일이다. 국가장 절차에 따라 정부는 빈소를 설치·운영하며 운구, 영결식, 안장식을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