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이웃갈등 대화로 푼다…회복적 경찰활동 확대

이소현 기자I 2022.08.30 11:11:58

올 1~7월 회복적 대화 조정률 92%
피해자 89%·가해자 90% 만족 결과
하반기 10곳 추가…총 230곳 확대 운영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학생 A(16)군은 무인점포에서 2만7700원 상당의 과자를 훔쳤다. 그는 “돈이 없고 배고파서 훔치게 됐다”고 했다. 실제 A군은 부친이 공공근로와 지자체 기초생활 수급을 받고 있는 형편에 지적장애 형 두 명과 동생들을 포함 8남매가 생활하면서 식비 해결이 어려운 가정환경에 놓여 있었다. 경찰은 A군의 절도 범행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다시 범죄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경찰의 회복적 대화 활동을 통해 이러한 안타까운 가정사를 들을 업주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며 용서하고 기회를 주기로 했다.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고 사건은 즉결심판 청구로 마무리됐다.

가해자 검거·처벌에 초점을 둔 응보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처럼 범죄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등에 집중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이 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회복적 대화’ 활동을 한 사건의 조정률은 92%에 달한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학교폭력과 이웃 간 분쟁 등 처벌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이 필요한 사건을 대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의하면 경찰이 대화 자리를 마련해 피해를 회복하고 재발방지 등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회복적 경찰활동을 하는 전국 220개 경찰서는 이 기간에 772건의 회복적 대화 신청 사건을 접수했다. 접수된 사건은 가정폭력 259건(34%), 폭행·협박 181건(23%), 학교폭력 164건(21%) 등이다. 이 가운데 살인까지 일으키며 사회적 문제가 된 ‘층간소음’도 50건 다뤘다. 현재까지 대화가 완료된 541건 중 499건(92%)에서 조정이 이뤄졌다.

회복적 대화 활동을 설문조사한 결과 피해자는 89%, 가해자는 90% 만족한 것으로, 재의뢰 의사는 99%로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회복적 대화 활동을 보면 △층간소음 △이웃 간 모욕 △소년범 절도 △학교폭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다.

다세대 주택 아랫집 거주자가 윗집 층간소음에 대한 불만으로 새벽에 기타 연주를 하고, 욕설 문자를 반복적으로 보내는 등 1년간 갈등이 지속했다. 윗집이 스토킹 처벌법으로 112신고 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재발을 우려해 회복적 대화 활동을 연계한 결과 아랫집은 층간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욕설 문자 등 과도한 행위를 한 것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윗집은 새벽 소음이 딸이 게임을 하는 소리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주의할 것을 약속하고, 경찰서에 아랫집 거주자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입건 전 사건을 종결했고, 이후 재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꽈배기 가게를 자주 찾는 단골손님(69)이 매장 내 시식이 안된다고 하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욕설과 폭언을 해 업주(37)가 모욕죄로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화 위주의 회복적 경찰활동을 한 결과 손님은 연장자로서 술에 취해 한 행동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사과했다. 업주는 당시에 화가 너무 많이 나서 고소를 했으나 사실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이고 경찰서에 단골손님에 대한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경찰은 불송치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어 경찰은 학교 폭력 사건도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풀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사이 가해자는 피해자가 담배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등 폭행해 학교폭력으로 송치됐다. 이들 간 대화를 진행,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어 좋았으며,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사건 진행 중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것 같다고 처벌불원서를 제출, 사건은 불기소로 마무리됐다.

경찰은 전국 258개 경찰서 중 회복적 대화를 시행하는 곳을 작년 200곳에서 올 상반기 20곳 늘렸으며, 하반기에 강원(정선·평창·횡성·인제), 충남(금산), 전북(무주), 충북(진천), 경북(봉화), 전남(장흥·보성) 등 10곳을 추가해 총 230곳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현재 회복적 대화 전문가는 28명을 추가로 위촉해 429명까지 늘렸다. 경찰청은 내년에 전국 경찰서로 확대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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