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희석기자] 26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은 사장단 재신임을 통해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동안 정몽헌회장 주변에 있으면서 제대로 보필을 하지 못했던 가신출신의 CEO나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었던 인사들을 솎아냈다. 전문경영인에 대한 힘을 실어주고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 대비, 전열도 재정비했다.
지난 18일 긴급사장단회의에서 일괄사표를 제출했던 현대 계열사 8명의 사장단 가운데 절반인 4명이 현정은 회장의 재신임을 받았고 나머지 4명은 퇴진하게 됐다. 교체폭은 당초 예상됐던 2~3명선보다 컸다. 재신임 시기도 연말연초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보다 한발 빨랐다.
◇누가 재신임받았나
면면을 보면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 최용묵 현대엘리베이(017800)터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노정익 현대상선(011200) 사장이 재신임을 받았고 조규욱 현대증권(003450) 부회장,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김재수 현대경영전략팀 사장, 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등은 옷을 벗게 돼 희비가 엇갈렸다.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은 대북사업이라는 `상징성`으로 `국민기업화`카드를 뒷바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신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과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은 이번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어 일찌감치 재신임 대상으로 분류돼 왔다.
귀추가 주목됐던 대상은 현대상선의 노정익 사장. 노정익 사장은 정상영 KCC명예회장 측으로부터 `뛰어난 재무통으로 현대그룹 전체를 볼수 있는 눈을 갖고 있는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로 `러브콜`을 받았다는 얘기다 나돌았던 인물이다. 정작 본인은 "답변 필요성을 못느끼며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힌바 있는데 이번에 재신임됐다. 아래위의 두터운 신망이 현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가신그룹 퇴진..역할주목
이번 재신임 과정에서는 그동안 가신그룹으로서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다거나 정몽헌 회장때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던 인사들은 탈락했다. 김재수 사장, 강명구 회장등인데 반대로 김윤규 사장은 대북사업 덕분에 살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또한 그동안 그룹 주변에서는 현정은 회장이 힘이 없어 주변의 가신이나 전문경영인들에게 휘둘리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 재신임 과정을 거치며 현회장은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당초 현정은 회장의 출범에 맞춰 일부 사장들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KCC와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현안 때문에 인사 시기를 놓쳤다. 마침 추진했던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가 법원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 수용으로 거부되면서 `공백기`가 생겼고 이를 이용해 현회장은 전열을 재정비 했다.
앞으로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재신임을 받은 인사들의 역할. KCC와의 경영권 분쟁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은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에 있어서도 보다 투명하고 주주중심으로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강명구 회장이 물러난 현대택배 대표이사에는 최하경 현대택배 전사장등 과거 현대그룹에 몸담았던 전문경영인들의 영입이 점쳐지고 있다. 나머지 계열사는 현 대표이사들이 그대로 있어 별도로 후임인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경영전략팀은 조만간 조직재정비를 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의 위상도 관심사다.
◇이사회 안거쳐..취지 `퇴색` 지적도
이날 재신임 내용에 대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C측은 다소 긴장하는 분위기다. KCC의 고위관계자는 "현대 인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코멘트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영진이 어떻게 꾸려지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현대 각 계열사가 앞으로 얼마나 잘 되느냐 하는 것"이라고 원칙론을 펼쳤다.
이 관계자는 또 "능력있는 사람들이 맡아서 기업을 잘 이끌고 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이번 현대인사가 이같은 점에 부합하느냐 여부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비롯 현정은 회장이 전격적인 재신임을 통해 자신의 친정체제를 구축했지만 재신임 과정에 대해서는 당초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장단의 일괄사표를 받았던 당시 현회장 측근은 "일괄 사표를 낸 만큼 각계열사 이사회에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계열사들이 이사회 일정도 확정되기 전에 현정은 회장은 서둘러 자신의 기준을 갖고 재신임 여부를 결정했다. 이번에 재신임을 받은 현대계열사 관계자는 "이렇게 결론이 났으면 굳이 이사회가 필요 없는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경영권 분쟁의 대립각에 서있는 금강고려화학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32만주 취득을 결의, 현 회장의 친정체제 구축과는 아랑곳없이 경영권 확보에 급피치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