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월스트리트에는 `~st`로 끝나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스트래티지스트(strategist), 애널리스트(analyst) 등등.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이코노미스트도 여러 명을 둔다. 미국 경제만 연구하는 이코노미스트가 있고, 글로벌 경제만 바라보는 이코노미스트가 있다. 세계를 몇개의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에 이코노미스트를 두는 것도 기본이다.
스트래티지스트나 애널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주식, 채권, 환율 등 기본적인 금융상품과 금, 석유, 농산물 등 상품선물의 투자 전략을 연구하는 스트래티지스트들이 따로 있다.
월가가 이처럼 세분화된 전문가들을 두는 이유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다루기 때문이다. 뉴욕 맨하튼이 인종 전시장이라면 월가는 최첨단 금융상품 전시장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전 신문을 뒤적이다 새로운 `~st`를 하나 발견했다. Metallurgist. 야금가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월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연수익률 50% 넘버원 펀드
월가에는 금융시장과 잘 어울릴 것같지 않은 `~st`도 가끔 있다. 시티그룹에는 얼마전까지도 전문 기상학자(meteorologist)가 있었다.
오렌지, 밀 등 상품선물 가격은 작황과 직접 관련이 있다. 월가의 기상학자들은 해당 상품의 스트래티지스트들을 도와서 기상을 분석하고 농작물 작황을 예측해낸다.
지난 해 겨울 기상학자들은 밥 값을 톡톡히 했다. 이들은 2002년 겨울이 다른 해보다 유난히 추울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에 따라 난방유 수급과 에너지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달라졌다.
이라크 전쟁 기간 중 투자은행들은 전직 장성 등 군사전문가를 고용,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로 전황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지, 미군의 승리가 확실한 것인지, 대량 살상무기가 정말 존재하는지, 이런 군사적 문제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월가는 금융상품 가격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고용할 준비가 돼 있다.
그렇다면 Metallurgist는 어디에 써먹을까. 월가에는 금(gold)에 투자하는 전문 뮤추얼펀드가 여러 개 있다.
이 펀드들은 금광업체의 주식을 사기도 하고 금 자체에 투자하기도한다. Metallurgist는 골드 펀드 운용에 필요한 전문가다.
올해 3분기 뮤추얼펀드 중 가장 수익률이 높았던 펀드는 스커더골드앤프리셔스메탈즈라는 펀드다.
이 펀드는 3분기에만 44.33%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수익률은 50.53%에 달했다. 과거 4개 분기 동안 누적 수익률은 71.40%로 월가의 다른 모든 펀드를 제치고 넘버원 펀드에 등극했다.
3분기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5.3%, 기술주 전용 펀드의 수익률은 13%에 불과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다코 쿠즈마노빅이 바로 Metallurgist다. 쿠즈마노빅과 함께 펀드를 맡고 있는 유안 렉키는 지질학자(geologist)다.
◇노다지를 찾아라
Metallurgist는 광산 개발 전문가다. 지질학, 광산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성이 있는 광맥을 찾아낸다.
쿠즈마노빅은 2001년 스커더에 합류해 스커더골드 펀드를 맡았고, 이후 펀드 수익률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쿠즈마노빅이 찾아낸 금맥은 아이반호마인즈라는 캐나다 광산회사다.
3억6000만달러 규모의 스커더골드 펀드는 아이반호마인즈 주식을 11%나 보유하고 있다. 18개월전 아이반호마인즈의 주가는 3캐나다달러였다. 지금 아이반호마인즈는 13캐나다달러를 호가한다.
쿠즈마노빅은 아이반호가 금맥을 찾아낼 것이라는 것을 Metallurgist로서의 식견으로 예견한 셈이다.
아이반호마인즈의 주가 그래프는 금맥이 터졌을 때 광산주가 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주식을 사전에 찾아내려면 쿠즈마노빅과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스커더 골드펀드는 자산의 절반 이상이 광산주로 채워져 있다. 아이반호마인즈 외에도 전세계에서 금맥을 찾고 있는 광산 기업들이 스커더 골드펀드의 자산이다.
그렇다면 아이반호마인즈는 과연 어떤 금맥을 낮아낸 것일까.
◇황금의 두가지 속성
아이반호마인즈의 성공을 얘기하기 전에 금과 금펀드의 속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금은 투자 수단인 동시에 원자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전세계 주식시장이 경기 불황의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 금펀드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률을 구가했다. 금이 대체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유동자금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금리 하락기 채권이 제1의 투자 수단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경제가 회복 무드에 들어서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시화되면 금의 존재가 다시 한번 빛을 낼지도 모른다.
금융시장에서 금은 달러에 대한 대체재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달러 약세`에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들도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달러 약세의 반사이익을 본 것이 금이었다.
투자 수단으로서의 금은 `헤지 장치`다. 가치를 저장함으로써 인플레를 피해갈 수 있고, 달러 하락에 대한 대체물로 금을 찾기도 한다.
금의 또 다른 특성은 원자재라는 것이다. 금은 구리, 은, 백금, 팔라듐과 마찬가지로 경기 회복기에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금은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훌륭한 투자 대상이 셈이다.
지난 2000년 금펀드는 평균 3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시 기술주 펀드들은 무려 31%의 손실을 봤다. 최근 기술주 주가가 랠리를 벌이면서 기술주 펀드의 수익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금펀드의 수익률 기세도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 투자가 생각만큼 간단한 것은 아니다. 쿠즈마노빅 자신도 "금은 투자 위험이 높다(Gold is a risk diversifier)"고 말한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일반 펀드의 금 투자 비율을 5%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한다. 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지 않는한 투자 수익률을 보충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의미다.
쿠즈마노빅이 스커더 골드 펀드를 맡은 2001년 수익률은 16%, 2002년 수익률은 67%였지만, 그 이전 1997년과 1998년 이 펀드는 무려 41%와 17%의 손실을 기록했었다.
◇21세기 중국판 골드러시
아이반호마이즈로 돌아가자. 아이반호 주가는 여름부터 상승 기미를 보이다가 9월로 접어들면서 급등세를 나타냈다.
아이반호는 내몽고 고비사막에 있는 오유 톨고이(Oyu Tolgoi)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아이반호는 9월과 10월 오유 톨고이 광산에서 다량의 금과 구리가 발견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오유 톨고이 광산의 구리와 금 광맥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티엔샨 산맥의 이곳 저곳에서는 서방의 광산기업과 중국, 몽고 정부의 합작 프로젝트가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이는 1851년 오스트레일리아, 1849년 캘리포니아, 1886년 남아프리카의 골드 러시를 연상시킨다.
바릭골드같은 세계적인 광산 기업은 아이반호의 주식을 사들여 뒤늦게 중국판 골드 러시에 뛰어들었다. 바릭골드는 러시아 광산 개발에도 지분을 투자했다.
세계적인 알루미늄 그룹인 알칸을 비롯 바릭골드, 노텔네트웍스같은 거대 기업에서부터 퍼시픽미네랄즈같은 소규모 광산 회사까지 중국 내륙과 내몽고의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
홍콩에서 금펀드 매니저로 활동하는 마크 페이버는 "세계 굴지의 광산 기업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과 아시아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하면서 구리, 백금, 니켈 등 금속 원재재 수입 증가율이 매년 25%를 웃돌고 있다. 세계 금속시장에서는 중국을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보고 있다. 금속 가격을 끌어올리는 최대 변수가 중국이라는 것.
중국 정부도 동부 연안지역의 산업화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서부 내륙 지역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산맥과 사막 속에 묻혀 있는 광산 자원을 개발함으로써 내륙을 산업화시키고, 동부연안의 공업지대에 원자재를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국제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이해와 중국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아이반호마이즈의 오유 톨고이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같은 중국의 전략에 적극 호응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캐나다, 호주, 유럽의 기업이라는 것. 중국도 미국 기업보다는 캐나다 기업을 선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강력한 성장 엔진을 갖게 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여기서도 감지된다.
여하튼 스커더 골드펀드는 중국을 중심으로한 금융, 산업의 흐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펀드 수익률로 연결시켰다. 펀드를 운용하는 Metallurgist는 야금학뿐 아니라 금융, 산업, 국제정치까지 섭렵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