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박호식기자] 지난 23일 낮12시38분 18만5500원. SK텔레콤(17670) 주가가 기어이 하한가로 떨어졌다. 33개월만의 일이었다. 오전내내 마음졸이며 시세에 눈을 붙이고 있던 SK텔레콤 IR팀원의 입에서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지난 2000년 4월17일 이후 9.11 미국테러 때에도 하한가로 빠지지 않던 주가가 "블루칩"이라는 닉네임이 무색하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것.
하루만으로 상황이 끝나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SK텔레콤 내부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표문수 사장도 본격적인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CEO로서 경영계획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은 IR실 차원을 넘어섰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오후 1시쯤. IR을 비롯. 재무 등 관련 고위임원회의가 소집됐다. 표문수 사장을 비롯, 서영길 CR센터장(부사장), 김신배 전략기획부문장(전무), 조민래 CR부문장(전무), 하성민 경영기획실장(상무), 조성해 IR실장(상무), 장동현 재무기획팀장(상무)이 참석했다. 이들은 모든 시장반응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고 투자자의 심리회복을 꾀할 대책을 협의했다.
이런 SK텔레콤의 상황은 전일 지난해 실적 및 올 사업계획발표를 위한 컨퍼런스콜에서부터 예견됐었다. 컨퍼런스콜에서 회사측이 올 투자규모 2조5000억원을 발표하자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은 투자계획에 집중됐다. "기존에 밝혔던 규모에서 너무 커졌다", "어떤 부분에서 투자비가 확대될 수 밖에 없었나"...
설명과 사과를 반복하며 컨퍼런스콜이 끝났지만 다음날인 23일 아침 사단이 벌어졌다. 주식시장이 열리기도 이른 시간에 국내외 증권사들의 목표가격 하향조정이 줄을 이었다. "투자비를 급작스럽게 확대한 배경을 집중점검해봐야 한다"는 애널리스트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왔다.
SK텔레콤 IR실에서는 전화가 빗발쳤고 IR실은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며 대책 회의를 가졌다. "투자규모 확대로 어느 정도 시장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장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섰다" 오전 IR팀 실무자의 말이다.
오후 1시에 시작된 관련 임원회의는 장시간 계속됐다. SK텔레콤은 결국 하한가로 하루를 마감했고 임원들은 무언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오후 7시쯤. 표사장을 위시해 고위급 임원회의가 다시 소집됐다. 참석한 임원들의 얼굴은 한층 굳어있었다. 두번째 회의는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협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밤 10시를 넘겼다. 결국 밤 12시쯤 "잉여현금흐름 축소에 따른 주주환원 감소부분을 일부 보전하고 올 투자계획을 다시 점검하기로 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협의가 끝났다.
심야회의가 열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IR팀 실무자들이 미국 뉴욕시장의 DR가격 동향을 체크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미국시장에 회사의 입장을 알려야 하는 사태가 초래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때문이었다. DR가격은 개장전 19.24달러에서 오전 9시30분(미 동부시각) 개장, 9시45분 17.8달러, 11시5분 17.2달러...환율을 감안할때 DR가격은 국내 시장의 마감가를 밑돌기 시작했다. 더이상 버티다간 큰일이 날 상황이었다. 외국인들이 가격이 높은 원주팔고, 가격이 낮은 DR을 사들이는 아비트리지(차익거래)가 우려됐기 때문.
SK텔레콤은 마침내 "더이상의 DR가격은 다음날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차익거래로 이어지고 국내 주가에 더 심각한 영향을 줄수도 있다"고 판단, 뉴욕시장이 열려있는 시각에 회사의 방침을 공시로 알렸다.
한국시간은 33개월만의 하한가를 기록한 23일을 마감하고 24일로 넘어갔다. 밤 1시에 다다른 시간. SK텔레콤은 초유의 "야밤 공시"로 회사의 방침을 알렸다. 거센 반발을 보인 시장과 벌인 사투는 유혈낭자의 상처로만 남았다.
24일 새벽까지 마음을 졸이던 SK텔레콤 IR직원들은 이날 오후 기관투자가들을 설득하기 위해 피곤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또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기 위한 이사회 준비와 투자계획 재점검에 착수했다. 무엇때문에 이런 하루가 시작됐는지를 상기하고싶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시장을 거스르면 안된다"는 교훈만 되새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