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사 및 연구도 고리와 월성 등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부분에만 국한돼 진행됐고, 이마저도 원전을 짓고 운영이 시작된 후에야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과 영·호남 등 전국에 활성단층 수백개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월성원전 인근에 있는 읍천단층과 수렴단층을 비롯해 수도권과 충청, 호남 등 전국에 활성단층으로 추정되는 25개 단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최성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역사적으로도 한반도 전역에서 지진이 보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활성단층을 비롯해 단층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활성단층이란 지각운동으로 지층이 끊긴 단층이 아직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활성단층이 지진의 진앙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2042년까지 25년간 525억원을 투입해 활성단층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강태섭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한반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있다. 한반도는 활성단층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생한 경주지진의 진앙지를 놓고 분석이 제각각”이라며 “지진의 깊이나 경사각을 고려하면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추가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 지진이나 규모 6.5 이상의 대지진에 대한 우려와 대비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이번 지진으로 주변 단층대에서 또 다른 에너지가 방출될 수 있으며, 이는 추가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간 기상청이나 한국지질연구원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서는 ‘원전 주변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했지만 이제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지진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보수적으로 평가해 준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낙관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양산단층은 이미 1997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높은 단층으로 분류돼 왔다. 2009~2012년까지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의 의뢰를 받아 총사업비 20억원을 들여 양산단층 일대의 활성단층 지도를 작성한 지질자원연구원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양산단층은 낙동강하구에서 경북 울진군 기성면까지 200㎞ 이상 이어져 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당시 양산단층을 활성단층이자 주향이동과 경사이동 등과 같은 다중변형을 겪은 단층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조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주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비공개문서로 남아 있었다. 일부에서는 당시 연구결과가 해당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던 정부 계획에 차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은폐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정부는 원전 건설 당시 양산단층에 대한 조사에서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발표했다가 일부 활성단층이 발견되자 단층 길이가 짧아 원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원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부원장은 “당시 연구가 너무 짧고 급하게 진행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면서 “단층을 조사하고, 최종적으로 활성단층으로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감안할 때 지금이라도 원전부지에 대한 지질발생 가능성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지질관련 한 전문가는 “당시 정부는 정치적으로 원자력발전소 부지를 선정·건설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단층 등 지질조사를 진행했다”며 “지금부터라도 국내 모든 전문가들이 참여해 철저하고 꼼꼼한 조사를 진행한 후 대응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