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20년간 변함없던 상속세, 현실 정합토록 개선해야”

박민 기자I 2023.07.12 12:00:00

기획재정부에 ‘세제개선 건의서’ 제출
상속·증여세 과표구간, 일괄공제 한도 조정
과표구간, 2000년 개정 이후 지금껏 유지
“물가·경제 규모, 자산가치 변화 반영 못해”
상속세 과세방식, 유산세→유산취득세 전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R&D 세제지원 확대

[이데일리 박민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지난 20년간 고정돼왔던 상속·증여세 과표구간의 조정안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완화 내용을 담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선 건의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총은 “지난해 법인세율 인하,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등에 이어 올해도 정부가 ‘민간주도 경제성장’을 목표로 세제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기업 조세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 세제 가운데 그간의 경제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조세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내용이 있어 이번에 건의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이번 건의안에서 가장 먼저 상속·증여세 과표구간과 일괄공제 한도 조정을 요청했다. 합리적인 상속·증여세제 운영을 위해 경제 규모나 물가 변화와 무관하게 20년 넘게 고정된 상속·증여세 과표구간을 현실에 정합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상속·증여세 과표 금액과 구간별 세율은 1억원 미만은 10%, 1억원~5억원 미만은 20%, 5억원~10억원 미만은 30%, 10억원~30억원 미만은 40%, 30억원 이상은 50%다. 이러한 상속·증여세 과표구간은 2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후 지금까지 개정 등의 변화가 없었다.

또한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 역시 1997년 이후 25년째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괄공제는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 기초공제, 기타 인적공제 등의 합산액이 5억원보다 적을 때 5억원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경총은 “1990년대 말의 물가 등 경제 상황과 자산가치를 고려해 설계된 상속·증여세 과표구간과 일괄공제 한도가 지금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동일한 자산을 가지고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2000년에는 5억원이던 서울 소재 A아파트를 자녀 1명에게 상속할때는 세 부담이 없었지만, 2022년 시점에서는 똑같은 해당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상속세가 수억원이 늘어난다.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해당 아파트 가격은 21억원으로 올랐지만, 상속세 부과 가준은 20년 전에 만들어진 잣대이다보니 약 4~5억원의 상속세가 발생하는 것이다.

경총은 또한 상속세가 개인이 실제로 상속받은 재산에 맞지 않게 부과되는 현실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행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상속세 과세방식은 상속인 개개인이 상속받는 재산 규모에 맞는 과세가 아니라, 피상속인(선대)의 전체 유산에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상속인이 각자 취득하는 개별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하기 때문에 여러 명에게 분할할수록 상속세 부담이 감소할 수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중에서 20개국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도입중이며, 유산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미국, 영국, 덴마크 4개국에 불과하다.

경총은 “조세원칙에 부합하는 세제 합리화뿐 아니라, 상속세 과표구간이 오랫동안 조정되지 않아 상속세 부담이 크게 증가한 중산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투자와 근로자 임금 증가, 상생 지원 등에 쓰지 않은 기업 소득(미환류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이하 투상세)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 제도는 고임금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만 적용되는 제도임에도, 총급여가 8000만원 이상인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인정하지 않는 현실 비정합적인 구조로 설계돼 있어 이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총은 “현행 투상세는 총급여 8000만원 미만 근로자의 임금상승만을 인정해 이를 과세 산식에 반영하고 있다”며 “그러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 다수가 평균임금 수준이 1억원을 훨씬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기업집단에서 총급여가 8000만원 미만인 근로자의 비중은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현행 제도하에서는 과세대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 기업들이 입법 취지에 맞게 근로자의 임금을 상승시켜도 소득 환류로 인정받을 수 없다”며 “‘임금상승’ 인정 기준을 상향하고, ‘배당’을 투상세 과세 산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선방안도 정부에 건의했다. 우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줄여 원활한 기업 승계를 촉진하고 경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OECD 평균 수준인 25%로 과감하게 낮추고, 일률적인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상향하고 업종변경 제한을 폐지하는 한편, 승계 전 의무경영 기간을 축소하는 등 공제요건도 더욱 완화해 세부담 완화 효과를 기업인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인세에 대해서는, 최고세율(현 최고 24%, 지방세 포함시 26.4%)을 OECD 평균 수준인 22%로 더 낮춰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2024년까지 1년 연장하고, 일반 R&D 세액공제율도 과거 수준(2013년)으로 환원해 기업의 신규 투자나 기술력 향상이 전산업에 폭넓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앞으로도 우리 조세경쟁력을 높이고 투자 환경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정책 시그널(signal)이 지속돼야만 국내 투자가 가속화되어 경제가 살아나고 국가 재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세제 합리화와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세제개편에 더욱 박차를 가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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