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굴리는 사람들]"수식어 필요없다, 내가 곧 펀드"

구경민 기자I 2011.03.21 11:36:25

김유경 알리안츠GI 자산운용 이사(주식운용본부장)
자산운용업계 최초 여성 1호 임원
"펀드는 나의 분신..보이지 않는 것까지 봐야"

[이데일리 구경민 기자] 새벽 별 보며 출근해 저녁 별 보며 퇴근. 매일매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익률. 돈이 들어오면 들어오는대로, 나가면 나가는대로 좀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리.

어디 그 뿐인가. 날고 긴다는 여의도 브레인들 사이에 경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지.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버티기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또 잘하기까지 해야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펀드 매니저는 특히 스트레스 높기로 악명이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산운용사 임원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출산과 육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여성의 경우, 펀드 매니저에 입문하는 케이스 자체가 드물었다. 들어오더라도 임원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숫자적 감각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선입관이 강했고, 여성 스스로 포기하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드디어 지난 2009년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김유경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알리안츠GI)자산운용 이사(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숫자가 가장 큰 무기가 됐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오직 높은 수익률로만 평가하는 풍토가 오히려 그에게는 득이 됐다.

"운용하는데 여자라서 불리한 적은 없었다"는 그는 "여자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 오직 수익률 관리에만 치중했고, 그러다보니 임원이 돼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졸업하자마자 현모양처가 될 법한 스펙을 딛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트대학에서 회계학석사를 땄다. 내친 김에 미국 회계사 자격증까지 손에 쥐었다.

귀국 후 교보투자신탁운용(현 교보악사자산운용)의 공채 1기로 운용업계에 발을 디뎠다. 1996년 처음으로 펀드 매니저 길로 들어섰다.

펀드 매니저 직함을 달았지만 곧장 운용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기업 분석부터 시작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종목 발굴과 가치 분석에 쏟았다. 대부분 섹터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때 쌓은 경험이 현재의 운용에 탄탄한 토대가 되고 있다.

지난 2007년 알리안츠GI자산운용으로 옮긴 그는 연기금 자금을 맡아 운용하게 됐다. 굴리는 자금이 커지고 성과가 뒷받침되면서 운용에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직 후 2년만에 주식운용본부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모든 일의 `처음`은 압박과 기대를 한 몸에 받기 마련이다. 여성 임원, 그 중에서도 `첫` 여성 임원은 후배들의 롤 모델이자 선례가 될 수 있는 자리다. 책임도 부담도 훨씬 커졌다고, 그는 토로한다.

그는 "자리가 높아질수록 책임이 커지더라"며 "`모든 영광은 아래로, 모든 잘못은 위로`라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용에 대해서는 `펀드가 곧 나의 분신`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매니저의 성향과 철학, 삶의 원칙이 펀드에 고스란히 묻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수익률이 좋을 때 가장 기뻤고, 수익률이 좋지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며 "수익률을 관리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았다"고 말했다.

세상이 변했다. 업권에 상관없이 여성 인재들이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숫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 우수함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운용업계도 마찬가지. 많은 여성 주니어(Junior) 매니저들이 한국의 피터린치를 꿈꾸며 매일을 달리고 있다.

김 이사는 "매니저라면 `See the unseen(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시장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펀드 매니저들이 간과하는 것까지 집어내는 것이 진짜 실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후배들에게는 `슈퍼우먼`이 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일에서 100% 완벽할 수는 없다"며 "가정과 직장일을 동시에 잘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판단하고 결정해서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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