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220년 전 미국도 판결.. "판사 임명은 해야 할 의무"

성주원 기자I 2024.12.30 12:41:51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 1803년 美판결 교훈
"통치행위도 재량행위도 아닌 법적 의무"
"적법하게 선출된 판사는 반드시 임명해야"
"헌재는 3부 견제기관…균형있는 구성 필수"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법관의 임명은 통치행위도 재량행위도 아니다. 법에 따라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기속행위)다.”(현직 부장판사 A씨)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과 관련해 이미 223년 전 미국에서도 판사 임명을 둘러싼 헌정 갈등이 있었다. 1801년 존 애덤스 미국 대통령은 퇴임 하루 전 신임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판사를 지명했다. 하지만 일부 임명장이 제때 전달되지 못했고 제퍼슨 대통령은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에게 임명장 발부 중단을 지시했다. 이에 임명장을 받지 못한 윌리엄 마버리가 매디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 벽면에 새겨진 1803년 마버리 대 매디슨 판결문 구절. 이 판결에서 존 마셜 대법원장(앞쪽의 동상)은 사법심사 개념을 정립했다. (사진=위키피디아)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사 임명은 대통령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라고 판단했다. 재량으로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절차상 이유로 마버리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판사는 대통령에게 임명을 이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현직 부장판사 A씨는 “마버리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며 “헌법기관 구성에 있어 대통령의 임명 행위는 통치행위나 재량행위가 아닌 법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권한 행사가 위법한지 심사하는 기관이기에 3부가 골고루 구성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라며 “따라서 국회나 대법원장이 선출·지명한 인사에 대해 대통령은 임명할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행정부에 대한 의무이행 소송이 허용되지 않아 사법적 구제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사법부가 행정부에 특정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권력분립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법치행정 확립을 위해 의무이행 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재 정원 9명인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월 이종석 소장과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6명으로 심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국회 추천 인사들을 배제한 채 심리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구성의 본질에 반한다”고 우려했다.

A판사는 “헌법재판소는 3부를 견제하는 제4의 국가기관”이라며 “헌법이 국회(3명), 대통령(3명), 대법원장(3명)에게 골고루 재판관 선출·지명 권한을 준 것은 이러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적법하게 선출·지명된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의 마버리 재판은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확립한 역사적 판결로도 평가받는다. 당시 존 마셜 연방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행정부의 임명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확립하는 중대한 선례를 남겼다.

정형식(왼쪽)·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차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