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과 관련해 이미 223년 전 미국에서도 판사 임명을 둘러싼 헌정 갈등이 있었다. 1801년 존 애덤스 미국 대통령은 퇴임 하루 전 신임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판사를 지명했다. 하지만 일부 임명장이 제때 전달되지 못했고 제퍼슨 대통령은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에게 임명장 발부 중단을 지시했다. 이에 임명장을 받지 못한 윌리엄 마버리가 매디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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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 A씨는 “마버리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며 “헌법기관 구성에 있어 대통령의 임명 행위는 통치행위나 재량행위가 아닌 법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권한 행사가 위법한지 심사하는 기관이기에 3부가 골고루 구성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라며 “따라서 국회나 대법원장이 선출·지명한 인사에 대해 대통령은 임명할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행정부에 대한 의무이행 소송이 허용되지 않아 사법적 구제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사법부가 행정부에 특정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권력분립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법치행정 확립을 위해 의무이행 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재 정원 9명인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월 이종석 소장과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6명으로 심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국회 추천 인사들을 배제한 채 심리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구성의 본질에 반한다”고 우려했다.
A판사는 “헌법재판소는 3부를 견제하는 제4의 국가기관”이라며 “헌법이 국회(3명), 대통령(3명), 대법원장(3명)에게 골고루 재판관 선출·지명 권한을 준 것은 이러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적법하게 선출·지명된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의 마버리 재판은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확립한 역사적 판결로도 평가받는다. 당시 존 마셜 연방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행정부의 임명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확립하는 중대한 선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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