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개봉..한국 언론과 기자간담회
(도쿄=연합뉴스) “위안부 문제 예전에 청산했어야 합니다. ‘하시모토 담화’라는 식으로 지금 오르내리는 것은 굴욕적이에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은 26일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 이바리키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한국 개봉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그는 “그 당시에 일본 정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렇게 역사 얘길 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동안 쭉 경제 얘기만 했다. 경제 안 좋아지면 전부 다 잃어버리는 것 같은 상황이 됐다”고 하면서 “세계 경제가 정말 이상해졌는데, 돈을 계속 찍어내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아베노믹스 관련해 여러 얘기가 대두되고 있는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매일 매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정권에 관해 “우리 총리에 대해 말하긴 그렇지만, 지금 총리는 곧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그의 말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쓴소리를 거침없이 했다.
이어 “내 생각에는 동아시아 지역은 전부 사이가 좋아야 하고 중국, 한국, 일본은 서로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과정이 있겠지만 예전에 영국의 정치학자가 ‘미국은 결국 본인들의 목장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지 않을까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앞서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비판 글을 최근 스튜디오 지브리의 소책자 ‘열풍’(熱風)에 실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관해 그는 “‘열풍’에 실은 글로 인해 인터넷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인터넷을 전혀 안 해 무슨 얘긴지 모르고 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지난 20일 일본에서 개봉한 뒤 이런 역사 인식과는 다른 맥락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는 1920년대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회사 미쓰비시에서 비행기(전투기) 설계가로 일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안에서 그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으로 회사의 지시를 받아 충실히 비행기를 만든다. 이 비행기가 전쟁 도구로 쓰인다는 데 대한 고뇌는 크게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영화가 전쟁에 부역한 이들을 미화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관해 미야자키 감독은 “주인공이 의식은 안 했겠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가 태평양전쟁에 쓰였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그 죄가 단죄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이웃집 토토로’라는 작품을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지만, 결국은 아이들이 방에서 TV만 보고 나와 놀지 않는 상황이 됐다”며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극중 주인공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또 “이 작품처럼 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다”며 “일장기가 붙어있던 게 전부 다 떨어지게 되는데, 이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호리코시 같은 아버지 세대를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내비쳤다.
그는 “호리코시는 군의 요구를 더 많이 받았지만, 대항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같이 업고 가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했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그 시대에 살았다고 해서 (비난받기보다는) 그 순간 시대가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한 문제다”라고 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오는 9월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