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배우는 ‘변신’해야 합니까.
‘트랜스포머’도 아니면서 ‘변신’으로 유명한 배우가 있습니다. 대중의 눈에 우선 들어오는 부분은 외모입니다. 로버트 데 니로가 <성난 황소>에서 보여준 변신은 고전적 사례입니다. 극중 권투선수로 날씬한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 그는 은퇴 후 거구의 코미디언이 됩니다. 같은 사람인지 몰라볼 정도로 살이 뒤룩뒤룩 찐 몸입니다. 한국에선 설경구가 <오아시스>와 <역도산>에서 극과 극의 몸매를 보여줬습니다. 오른쪽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내사랑 내곁에>의 김명민도 체중 감량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배우들은 외모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배역을 오갑니다. 데 니로는 건달, 마피아 보스, 악마, 수도사 역을 잇달아 맡았고, 설경구는 잔잔한 멜로드라마, 소규모 예술영화, 1000만 관객의 상업영화에 모두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반면 평생 한 가지의 인상으로 기억되는 배우도 있습니다. 암투병 끝에 이번주 초 세상을 뜬 패트릭 스웨이지도 그런 배우일 겁니다. <더티 댄싱>(1987) 속 스웨이지는 열정적인 춤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안무가였고, 스웨이지 자신 역시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기에 춤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더티 댄싱>이 스웨이지의 멋진 몸을 보여줬다면, <사랑과 영혼>(1990·사진)은 스웨이지의 순정을 각인시켰습니다. 스웨이지는 이 영화에서 친구의 음모로 살해됐으나, 유령이 된 뒤 생전 사랑했던 여인의 곁을 맴도는 남자 역을 맡았습니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를 보니 스웨이지의 출연작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포함해 47편에 이르더군요.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이 기억하는 스웨이지는 이 두 편의 영화에서 본 남성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배우입니다. 대단한 미남은 아니지만 단단하고 보기 좋은 육체를 가졌고,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속깊게 연인을 사랑하는 남자. <사랑과 영혼>의 스웨이지는 생전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데미 무어가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라고 답하기만 합니다. 못다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영매의 힘을 빌려 옛 연인의 곁에 머무는 남자,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풀만 뜯어먹고 살 것 같다는 ‘초식남’, 김밥 속 우엉처럼 비실거리는 ‘우엉남’의 시대입니다. 1980년대풍 ‘사나이’인 스웨이지가 오늘날의 영화에 등장한다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웨이지가 자신의 이미지에 만족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관객이 스웨이지의 변하지 않는 이미지를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실제 스웨이지는 꽤 순정적인 남자이고 일에서는 프로페셔널이었나 봅니다. 결혼과 이혼과 또다른 결혼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할리우드에서, 스웨이지는 어린 시절의 연인과 23세 때 결혼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작품활동을 했는데, 연기력이 무뎌질까봐 진통제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스웨이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명우는 아니었습니다만, 한 가지 얼굴만으로도 동세대 여성 관객의 연인이 됐습니다. 고인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길 기원합니다.
▶ 관련기사 ◀
☞절망에 선 남녀의 ‘착한 멜로’
☞영화광 5명이 뽑은 부산영화제 추천작 ''베스트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