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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인텔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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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뉴스팀 기자I 2020.08.21 10:34:58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1980년대 중반, 인텔이 주력이던 메모리 사업을 접고 컴퓨터 프로세서 사업으로 전환한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당시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로 인해 경영난을 겪던 인텔의 사장 앤디 그로브가 고든 무어 회장에게 “새로운 회장을 영입한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으냐”라고 묻자 고든 무어 회장은 “메모리 사업을 접을 것 같다”라고 답해 인텔의 변신이 시작됐고, 이후 급성장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과 함께 세계 최강의 반도체 회사가 됐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자 유명 경영 대학원에서 요즘도 사용하고 있는 혁신의 대표적 사례이다.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인텔의 위상이 요즘 예전 같지 않다. 무어의 법칙을 만들어낸 인텔이 반도체 소형화 경쟁에서 밀려 7나노칩 출시를 또다시 연기하고 애플은 더 이상 맥북에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텔의 기술력 부재에 실망한 투자자들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면서 미국 반도체 업계 시총 1위 자리마저 엔비디아에 내주어야 했다.

인텔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업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척도로 보면 인텔에 별다른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발표된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전년 대비 20%, 순익은 16% 증가했다. 시장 점유율에 있어서도 개인용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의 80%, 고속성장하고 있는 서버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가는 하락하고 인텔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텔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력이나 시장점유율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미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의 부재이다.인텔은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한 이후 찾아온 두 번의 혁신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는 모바일 시장을 놓친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기 전 프로세서 제작을 인텔에 의뢰했다. 그런데 수익성을 따져본 인텔은 애플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도체 역사가 바뀐 순간이었다. 당시 인텔의 회장이던 폴 오텔리니는 은퇴에 앞서 그때를 회상하며 데이터에 의존해서 의사결정을 하지 말고 자신의 직관을 따랐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앤디 그로브나 고든 무어처럼 오텔리니가 직관에 따라 모바일 시장을 선점했으면 지금의 인텔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에 없어서는 안 될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 시장을 놓친 것이다. 인텔은 2010년에 개발 중이던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의 개발 중단을 선언하면서 시장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물론 당시에 누구도 10년 뒤에 인공지능 세상이 오고 머신러닝에 필요한 상상하기도 어려운 규모의 데이터 처리를 위해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가 컴퓨터 프로세서보다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인텔이 단순히 시장규모를 이유로 첨단 반도체 개발을 중단한 건 아쉬움이 남는다. 그 결과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 시장은 엔비디아가 장악하게 되고 머신러닝 시장의 성장과 함께 엔비디아가 시총에서 인텔을 추월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개의 사례 모두 혁신은 데이터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신은 직관으로부터 나온다. 과연 인텔의 현 경영진이 미래 반도체 시장을 꿰뚫어 보고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직관이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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