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약한 달러-1)코너에 몰린 미국의 선택

강종구 기자I 2003.05.20 15:40:46
[edaily 강종구기자]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이 역사책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강한 달러 정책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1995년 이래 미국이 펼쳐온 강한 달러 정책은 90년대 후반 미국 경제의 호황을 이끈 밑거름이었다. 달러가치 상승은 소비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구매력을 높여줬다. 소비가 늘어나자 기업실적도 좋아졌고 경제는 탄탄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꼭 따라붙는 반갑지 않은 동반자 “인플레이션”은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의 수입품 가격이 달러로 환산되면서 떨어져 물가상승을 저지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생기는 경상적자도 어렵지 않게 해결됐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주가가 오르자 국제투자자금이 너도 나도 미국을 찾았다. 해외자본의 지속적인 유입은 경상적자를 충분히 메웠다. 또 주가상승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부를 창출해줬고 이는 다시 소비로 이어지며 선순환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은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하고 있다. 미국 기술주의 거품붕괴와 그로 인한 장기적인 증시침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경상적자와 재정적자,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경제상황이 “달러를 버려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존 스노우 재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강한 달러의 의미를 새롭게 썼다.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지금 미국 행정부와 자신이 말하는 “강한 달러”를 90년대의 그 “강함”이 아니라고 선언한 셈이다. 존 스노우는 강한 달러를 “훌륭한 교환수단이고 가치저장의 수단이며 보유하고자 하는 어떤 것”으로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화폐의 정의와 기능을 그대로 강한 달러의 정의로 차용한 것이다. 존 스노우는 또한 이에 앞서 미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임을 여러차례 시사했다. 떨어지는 달러를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뜻이다. 시장은 이미 “약한 달러정책”을 정의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20일자 신문에 “워싱톤의 약한 달러정책”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존 스노우의 말과 함께 FT는 미국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달러 약세는 미국의 문제가 아닌 유럽의 문제”라고 밝힌 점을 주목했다. FRB는 이달초 금리를 동결하면서 현 경제의 최대 위협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약한 달러정책의 선택은 미국 정부나 중앙은행이나 기업들 모두에게 손해 볼게 없는 “윈-윈”전략이다. FRB는 기준금리가 이미 1.25%까지 떨어져 있어 경기부양을 위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어서 약한 달러가 유발하는 인플레이션은 손가락 까딱 하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다. 수출을 하는 기업은 유럽이나 아시아국가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좋고 미국내에서 제품을 파는 회사들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인하되는 수혜를 입는다. 수출이 늘어나면 정부는 지난해 5000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적자를 줄일 수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어 추가 지출이 어려운데 달러약세로 기업실적이 좋아진다면 한시름 놓을 수도 있다. 경상적자는 미국이 강한 달러를 포기하는 이유인 동시에 펀더멘탈상으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근거다. 도이체은행의 수석 외환전략가인 마이클 로젠버그는 “미국의 경상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의 평가절하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1분기 미국의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 경제전문가들은 경상적자가 GDP의 5% 이상이 되면 통화가치 하락이 뒤따른다고 본다. 그렇다면 달러는 언제까지 그리고 어느선까지 후퇴할까.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지만 달러가 장기적인 약세추세에 진입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마이클 로젠버그는 유로/달러 환율의 12개월 전망치를 1.25달러로 잡아놓고 있다. 또 2005년이 되면 유로/달러가 1.4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달러 약세의 종점은 두가지 이정표로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 경상적자의 규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소장은 미국의 안정적인 경상적자폭을 현재의 절반인 2500억달러로 추산했다. 그는 또한 달러가치가 1% 하락하면 경상적자가 100억~150억달러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또하나의 이정표는 유럽의 반응이다. 미국 달러의 약세는 경제동맹국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유럽과 일본 및 아시아의 수출은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일본은 이미 금리가 바닥인 시점이라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쓰며 달러약세의 속도조절에 주력하고 있다. 달러약세를 저지할 수 있는 곳은 유럽으로 보인다. 바클레이즈캐피털의 글로벌 시장전략가 래리 캔토는 “유로지역에서 유로강세가 경제회복을 막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되고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야 달러가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럽 각국 정부 관료들은 유로강세를 우려하며 유럽중앙은행(ECB)에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열린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럽 재무장관들은 환율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ECB는 현재 금리가 경기부양에 충분한 수준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