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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세제개편)대기업·부자를 위한 `감세폭탄` 논란

김성재 기자I 2008.09.01 15:26:31

정부 "감세로 중서민층 소비·기업투자 늘것"
"감세, 우리 현실에 안맞아" 주장도
경기활성화 가능여부 찬반 양론..재정건전성 우려

[이데일리 김성재기자] 정부는 ‘감세’를 키워드로 하는 2008년 세제개편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소비기반을 넓히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진작시켜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침체된 경기를 되살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대대적 감세 방안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그 혜택이 대기업과 부유층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감세 자체가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일 수 밖에 없지만, 대기업·부유층과 비교할 때 중소기업과 중산·서민층이 세제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는 비판이다. 
 
조세부담 정도와 세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에서 감세가 실제 경기활성화로 이어질 지도 논란거리다. 감세로 세입이 줄어들면 나라살림(재정)에 문제가 없을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세제개편에 이어 9월 하순경에도 또 한차례 종부세 등에 대한 추가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여 `가진 자들을 위한 감세` 논란은 가열될 전망이다.

◇ 정부 "감세 통해 일자리창출..신성장동력 확충"

1일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제개편과 관련, "정부가 바뀌면 (국정)철학도 바뀌는 것"이라며 세제개편의 기본방향과 감세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작은 정부론'을 모토로 내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재정지출보다 감세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이끌어내는 '신자유주의적' 감세를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대대적인 감세를 세제개편의 기본방향으로 잡은 데에는, 우리나라의 높은 조세부담률이 성장률 저하와 양극화 확대를 가져오는 원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재정부는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일본, 미국 및 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인데다 2000년 이후 빠르게 증가해 민간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법인세와 재산과세 비중이 OECD 평균보다 높은 반면, 소득세와 사회보장세는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기업들의 법인세율과 부동산세제 등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중·저소득층의 민생안정과 소비기반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이들의 세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지난 10년간 저투자로 약화된 성장역량을 감안해 감세로 기업투자환경을 적극 개선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강만수 재정장관은 “저부담으로 고투자, 고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하고 지난 10년간 고착된 저성장 구조를 벗어나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로 탈바꿈할 모멘텀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감세 '우리 경제현실에 적합한가' 논란

감세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정치권 등에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진행된 바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과 이를 반대하는 정부·여당이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한덕수 부총리는 "감세정책의 효과는 중장기적이고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세수 감소에 따른 영향은 너무 크다"며 "감세로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세율이 높은 단계에 있을 때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세율이 높은 상태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OECD가입국인 미국, 일본은 물론 경쟁국인 대만, 홍콩, 싱가폴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22.7%, 2007년)은 미국(20.6%), 일본(17.3%), 중국(16.8%), 싱가포르(13.0%), 홍콩(12.%)보다 높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재정조달을 세금보다는 미래세대의 부담인 국채발행을 통해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이어서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오히려, OECD 가입 30개 국가 가운데 미국, 일본, 멕시코 등 3개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 22.7%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30~40%대의 유럽 선진국의 조세부담률에 비해서는 한참 낮은 수준이어서, '낮은 조세부담률'을 근거로 감세론을 펴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 감세혜택 부유층·대기업에 치중..중산·서민층 비판 거셀 듯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이 '중·저소득층의 소비기반 확충'을 지원하고 양극화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감세의 혜택은 중·저소득층과는 큰 관계가 없다.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절반 정도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현재 근로소득 과세자는 전체 근로자(약 1162만명)의 54%이며, 나머지는 소득이 적어 과세미달자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내는 종합소득세의 경우도 전체의 47.5%가 과세미달자다. 서민층 또는 그 이하에 속하는 근로소득자·자영업자의 절반 정도가 이번 감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셈이다.

더욱이 재정부가 "이번 감세의 33.4%가 중산서민층에게 귀착된다"고 밝힌 부분에서도, 중산서민층의 기준을 '과표 8800만원'(소득공제분을 포함하면 소득 1억원수준)으로 잡고 있어, 중산서민층에 대한 감세 귀착분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도 고가주택을 보유한 극소수 부유층에게 해당되는 세금 완화다. 수십억원의 상속재산에 부과하는 상속세 역시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이밖에, 법인세 감세에 따른 귀착분을 봐도 대기업에 24%, 중소기업에 19.7%여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대한 혜택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번 세제개편의 핵심 감세 대상인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양도세,종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부유층과 대기업에만 혜택이 대거 돌아갈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 경기활성화 가능?..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도 크다 

감세효과가 경제활성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각 나라의 경제현실은 물론, 감세의 규모나 대상에 따라서도 효과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경우, 감세의 혜택이 중산서민층에게 돌아가지 않고 부유층, 대기업에만 치중될 경우 경기활성화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오히려 양극화 심화와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만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감세정책을 내놓자 폴 새뮤얼슨 등 경제학자 400명이 지난 2003년 "감세안은 단기적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악화시키고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적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조원의 소득세 인하는 경제성장률을 0.08%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지만, 세수감소로 인한 재정기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감세에 따른 항구적, 일시적 세수감소분은 09년까지 14조원, 향후 5년간은 무려 29조원으로 사상최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정부는 "09년은 감세재원 범위내에서 감세를 추진하므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경기침체와 소득감소 등으로 세입이 줄어들고 세출이 늘어날 경우 재전건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감세냐 아니냐는 각 정부의 선택의 문제"라면서도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대외적 요인에 대한 대응력이 약한 나라에서 정부 재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볼 때 감세에 따른 재정 불건전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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