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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3시53분께 발생한 이번 화재는 필로티 구조(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로 이뤄진 1층 주차장에서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화염이 화물용 승강기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대낮에 발생한 화재임에도 불구 29명이 사망했고 이중 20명이 2층 목욕탕 여탕에서 발견됐다. 발화점으로 추정되는 지상 1층 주차장에서 연기가 건물 내부 계단으로 순식간에 퍼진 탓에 지상과 가장 가까운 층인 2층에서 목욕을 하던 여성들이 피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이 22일 오전 6시 상황브리핑에서 “건물 1층이 필로티 구조인 탓에 주차된 차량 15대에서 건물 내부로 유입된 연기에 의해 2층 여성 목욕탕에서 피해가 컸다”며 “2층에 있는 목욕탕의 전면부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탈출이 불가능해 탈출경로가 막힌 상황에서 유독가스를 마시고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시에 건물 6·7·8층과 구획 없이 이어지는 화물용 승강기가 연기를 확대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스포츠센터는 6·7·8층은 화물용 승강기와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사이 공간에 차단막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무런 시설이 없었다. 게다가 화물용 승강기는 목재와 타일로 이뤄져 불길이 더 쉽게 번졌다. 반면 4·5층은 중간에 화장실이 있어 2층에서 유입된 연기가 다른 층에 비해 확산되지 않았다. 덕분에 3~5층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 8층 건물에 출입구는 한 곳 뿐…팔로티 구조 도마위
지난달 발생한 포항 지진에 이어 근 한 달 사이 대형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필로티 구조’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포항 지진 당시에도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빌라 등이 큰 피해를 입은데다 이번 참사 건물도 필로티 구조이기 때문이다.
필로티 구조는 기둥 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건물 면적에는 포함되지 않으면서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건축가들에겐 매력적인 장치로 꼽힌다. 다만 지진발생시 횡력을 지탱하는 힘이 일반 벽체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어 반드시 내진설계가 이뤄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취약한 상태다.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현장 시공자들의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20여년간 건물을 지어온 건설업체 사장 A씨는 “현장에서 필로티 건물을 짓다보면 내진설계를 하라고 하는데 구조사 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현장 시공자들이 거의 없다”며 “게다가 기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철근을 넣어 기둥 크기를 키워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아예 건물 면적에 포함돼버려 필로티를 튼튼하게 지을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강태웅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필로티 구조는 내진설계만 확실히 하면 땅이 좁고 차가 많은 대한민국에서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장치”라며 “그보다는 일정 면적 이상의 건물은 반드시 지상층 피난구가 2개 이상 있어야 하는데 이번 화재 건물이 이를 지켰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은 전체 8층짜리 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구는 1층 출입구 한 곳이 유일했다.
◇불에 잘 타는 외장재 사용…“큰 건물도 화재엔 속수무책”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에서 필로티 구조보다 더 큰 문제는 불에 잘 타는 외장재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외장재에 대한 질문에 “드라이비트도 있고 목재도 있고 주변에 스티로폼 등이 떨어져 있다”며 “자세한 건 현장을 감식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이비트는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로 단열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 단 스티로폼이나 드라이비트 등이 단열재로는 훌륭하지만, 난연(難燃)재로는 최악이다. 이같은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론돼왔으나 현행법상 단열재 소재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강태웅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아파트는 내부단열을 하게 돼 있는 반면 주택이나 상가 등은 외부단열을 하는데 단열재는 마음대로 지정이 가능하다”며 “돈을 적게 들이고 싶은 건축주와 튼튼하게 짓고 싶은 건축사, 중간에서 이윤을 남기고 싶어하는 시공사간 갈등으로 단열기능은 뛰어나지만 난연기능은 없는 스티로폼 등을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 지어진 대부분 건물에서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현장 전문가인 건설업체 사장 A씨는 “요즘 짓는 외단열재는 대부분 22cm 두께의 스티로폼을 천장에 덕지덕지 붙이는 걸로 끝낸다”며 “불이 나면 순식간에 타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마 사우나는 다른 건물보다 단열 기능이 더 강해야 해서 불에 잘 타는 외부 마감재를 더 많이 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난연재를 잘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마감재는 일반 스티로폼 등에 비해 2배 이상 고가라 건축주들이 꺼린다. 강 교수는 “비용은 더 비싸고 단열재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으니 모두가 저렴한 자재를 쓸 수밖에 없다”며 “아마 대기업 본사 같은 큰 건물들도 화재에는 취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사고로 29명(남3, 여23, 미상3)이 사망했고 29명(남22, 여7)이 부상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사고 인근 병원인 제천 서울병원과 명지병원으로 나뉘어 이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