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박근혜발 상품이 없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소장의 분석이다.
김 소장은 "박 대표가 당대표직을 무난히 해내고는 있지만 'Why 박근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한 자신만의 이슈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반면 이 시장의 추격 요인에 대해선 "교통체계 개편, 청계천 복원, 경부운하 건설 등 자기만의 이슈를 쏟아내고 있고, 그 실적이 서서히 평가받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시사평론가의 말은 박 대표와 이 시장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왜 내려가냐고 물으면 나는 왜 올라가냐고 반문한다. 반대로 이 시장에 대해 왜 올라가는 것 같냐고 물으면 왜 내려가냐고 답한다. 박 대표에겐 지지율 상승의 이유가 없고, 이 시장에겐 하락의 이유가 없다."
같은 맥락의 지적은 당에서도 나온다. 한 주요당직자는 "박 대표가 뚜렷이 못한 것은 없지만 저 쪽(이명박 시장)에서 선전한 결과"라며 "당이 내세운 이슈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집중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했다.
가령 '감세 정책'의 경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지 못했고, 여당의 경제실정을 공격했지만 실감나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 민생·경제를 외쳤지만 구호에 그쳤다는 평가다.
박근혜 '선거 신화' vs 이명박 '건설 신화'
이 시장은 지난 7월 KSOI 조사에서 15.1% 지지율을 보이며 박근혜(12.9%)를 앞지르더니 최근 29일 발표된 조사에서 20%를 넘으며 박 대표(15.9%)를 5% 가까이 따돌려 격차를 더욱 벌렸다.
더욱이 박 대표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대구·경북에서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32.9%로 급상승했다. 반면 박 대표는 28.8%로 낮아졌다.
이 시장측은 이 같은 변화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추세'로 안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무보좌역을 맡고 있는 조해진씨는 "시간이 걸리는 사업들이 서서히 결과가 나타나면서 관찰자(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며 "(서울시장 임기의) 초·중반이 '경제'였다면 후반부에는 '문화·복지' 등에 집중해 여성, 노인, 젊은층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연확대를 노리겠다는 의지다.
또한 호남에 대해서는 이 시장의 탈이념·탈지역적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호남이 발전하지 않으면 국가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지역발전론'과 '실사구시형'으로 접근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이 시장 측에선 조기에 뜨는 것을 우려했다.
이 시장은 취임 1주년에 맞춰 청계천 착공식에 들어갔고, 2주년에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완료했다. 또 10월 1일 청계천 복원 완공 전후로 올 하반기, 청계천 특수를 톡톡히 누리겠다는 계산이다. 강북 뉴타운 재개발, 시청앞 잔디광장, 서울숲 조성 등도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되었다. 서울시장 4년 임기동안 자신이 기획한 이슈들에 대해 속도조절을 해왔다는 얘기다.
물론 이 시장의 약점은 많다. 불도저 이미지 외에도 군대, 재산 문제 등 본선에서 부딪칠 쟁점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아직은 포지티브 선거 기간. 실적을 부지런히 쌓을 때라는 점에서 이 시장의 기획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이슈'가 없다
하지만 박 대표는 현상 유지다. 수성(守成)에 그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마이다스의 손'으로 승리를 이끌었지만, 탄핵 국면 '풍전등화'의 당을 구한 것도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4·30 승리도 '재보선 전문당=한나라당'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이슈를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박 대표는 열심히 준비해 대립각을 세웠지만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박 대표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선거에 대한 기여도는 공히 인정되는 바다. 당 혁신위(위원장 홍준표)의 '조기전당대회' 안이 좌절된 것도 내년 5월 지방선거를 박 대표 없이 치를 수 없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박 대표는 다시 10·26 재선거에 '올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4·30 재보선에서 여당에 내놓을 뻔한 경북 영천을 막판 승리로 이끌었던 것과 같이 본인만의 능력을 과시할 기회가 온 것이다.
'박정희 후광' 외에 자기만의 상품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에도 박 대표는 한 대학강연에서 "26일은 아버지가 흉탄에 돌아가신 날이기도 하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그림을 보면서 바위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극복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이명박 시장에 비해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아버지 시대의 정치적 자산에서 홀로서기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반박할 만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한 쪽 누르면 한 쪽 올라가는 '고무풍선' 게임
새달 1일 청계천 복원식을 앞두고 모든 언론이 새물맞이 행사를 다채롭게 보도하고 있다. 이 시장은 이미 '일개 자치단체장'의 위치를 넘어서 전국적 인물로 자리를 굳혔다.
박 대표는 이명박 시장이 초대한 '청계천 데이트'에 응한 데 이어 오늘(30일) 오후에 있을 청계천 복원 축하공연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 측근은 "청계천 사업은 서울시의 사업이기도 하지만 당의 자산이기도 하다"며 참석 배경을 설명했다.
당내 경선을 향한 대권 레이스에서 누가 승리할지 모르지만 박 대표와 이 시장, 양측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 지지율이 결국 '마의 30%'라는 한나라당 지지율 내에서 벌이는 제로섬 게임과 같기 때문이다.
한 주요당직자는 "DJ 정부 시절 한나라당 지지율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이 시장과 박 대표의 지지율 경쟁에 대해 "마치 고무풍선처럼 한쪽에서 누르면 한 쪽이 올라가는 식"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