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가석방 직후…이재용 '정중동 경영'으로 백신부터 챙겼다

이준기 기자I 2021.10.27 11:47:45

올 8월 중순 TF 가동…반도체 전문가 투입 등 '스피드 경영'
지인 통해 모더나 최고경영진 접촉…빛났던 '글로벌 네트워크'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 메시지…뉴삼성 기조 일맥상통

‘삼성 부당합병’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옥중에서도 백신 문제를 꾸준히 챙겼던 것으로 압니다.”(정부 고위 관계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위탁 생산하는 모더나사(社)의 코로나19 백신이 이번 주부터 국내에 풀리면서 재계 안팎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정중동 리더십’이 회자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진두지휘를 건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백신 생산을 해결해야 할 1순위로 과제로 꼽고 노력·시간을 쏟아냈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 8월 가석방 출소 당시부터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라는 새로운 ‘뉴 삼성’ 기조를 염두에 두고 물밑 경영 행보를 폈다는 의미다.

◇추석 연휴도 반납했다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8월 중순은 4차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때였다. 여기에 모더나 유럽 공장발(發)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지연사태로 국내 분위기는 매우 뒤숭숭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이 부회장의 백신 역할론을 언급하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은 날로 커졌다. 물론, 당시 삼바는 모더나와 협력 생산의 기틀은 갖췄으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처음 생산하는 것인 만큼 인허가 문제·안정적인 대량 생산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해있었다.

이 부회장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삼성의 기술·리소스를 결집해 생산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고, 이는 곧 삼성전자·삼바·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삼성 최고 경영진으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 구성으로 이어졌다. 당시 TF 내부 분위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휴일과 추석 연휴까지 반납한 채 연일 △체크 리스트 작성 및 점검 △컨퍼런스콜 실시 △각 계열사의 전문가 투입 △각종 인허가 문제 신속 대응 등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 공장팀은 생산 초기 낮았던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을 끌어올렸고, 까다로운 이물질 검사 과정엔 삼성전자 반도체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준비를 통해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출로 이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히면서 바이오 경영진과 임직원에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JY ‘글로벌 네트워크’

이 부회장 개인의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도 한 몫 톡톡히 했다. 모더나와 거래관계에 있던 오랜 지인을 통해 모더나 최고 경영진을 소개받고 영어의 몸에서 풀리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8월 화상회의에 나선 것이다. 이 부회장과 이 최고경영진은 당시 회의에서 단기적으로 성공적인 백신 생산을 통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바이오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데 입을 모았다고 한다. ‘위탁자·생산자’ 수준에 그쳤던 양사 관계는 이후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함께 논하는 파트너 관계로 격상됐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 TF 구성 등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한 데 아우러지면서 안정적인 대량생산 체계가 구축됐고, 이는 백신의 국내공급 일정을 애초 연말에서 10월로 앞당겼다.

올해 초 이 부회장이 오랜 지인인 산타누 나라옌 어도비 회장 겸 화이자 수석 사외이사를 통해 화이자 최고 경영진과의 협상 창구를 여는 등 화이자 백신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상황이 다시 재연된 셈이기도 하다. 애초 올 3분기 공급될 예정이었던 화이자 백신은 지난 3월부터 국내에 조기 도입된 바 있다.

◇‘뉴 삼성’ 행보 신호탄

삼성과 모더나 간 ‘파트너’ 구축은 백신의 안정적 공급을 넘어 ‘백신 허브’로서의 국가적 위상 제고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양사는 ‘미래 사업’ 분야에서도 협력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탄탄한 ‘신뢰 자본’을 갖췄다”며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반도체를 잇는 ‘K-바이오’ 비전 실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번 모더나 백신 생산 및 조기 국내 공급은 ‘뉴 삼성’ 행보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내놓은 첫 공식 메시지에서 이 부회장은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언급한 바 있다. 향후 이 부회장이 작금의 ‘잠행 모드’를 벗어던지고 대내외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란 게 재계의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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