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변동성지수(VIX)는 장중 지난 4월 7일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AI 대장주 흔들리자 반도체주 변동성 확대
전날 반등에 성공했던 기술주가 다시 매도 압력을 받으면서 S&P500 기술업종지수는 장중 4% 넘게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장 초반 3% 넘게 오르며 반등을 시도했지만 상승폭을 모두 반납한 뒤 1.9% 하락 마감했다.
마이크론은 1.4% 떨어졌고 브로드컴도 1.1% 밀리고 AMD도 3% 빠졌다. 불과 하루 전 나타났던 반등세가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최근 반도체주의 변동성은 유난히 커지고 있다. AI 투자 열풍을 타고 급등했던 반도체 업종은 올해 들어 닷컴버블 시기인 1999년 이후 가장 강한 상승 흐름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들은 밸류에이션 부담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AI 투자 확대라는 장기 성장 스토리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주가 상승 속도가 실적 개선 속도를 지나치게 앞질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오루크 존스트레이딩 수석시장전략가는 “전날 반등이 마무리된 뒤 시장 전반에 다시 매도 물량이 나왔다”며 “현재는 모멘텀 주식에 대한 차익실현과 업종 순환매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주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 이후 AI 관련주 밸류에이션 논란이 다시 불거진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
다만 기술주 약세에도 시장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S&P500 지수는 장중 한때 2% 넘게 밀렸지만 장 막판 상당 부분 낙폭을 만회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는 상승 종목 수가 하락 종목 수를 웃돌았다.
이는 시장 전반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기보다는 업종 간 이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가에서는 최근 투자자들이 고평가된 AI·반도체주 비중을 줄이는 대신 경기 회복 수혜가 기대되는 소비재와 산업재, 소재주 등 경기민감 업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브렛 켄웰 이토로(eToro) 투자전략가는 “기술주의 리더십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상승 흐름이 다른 업종으로 확산하는 것이 시장에는 오히려 건설적”이라며 “상승세가 소수 기술주에만 집중될 경우 시장 기반은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에너지주를 제외한 상당수 경기민감 업종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
중동 정세도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상공을 순찰하던 미군 아파치 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은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시장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협상에 근접했다는 기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오루크 전략가는 “트럼프의 게시글이 시장 하락폭을 한 단계 더 키웠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1.45달러로 전장 대비 2.97% 내렸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88.20달러로 전장보다 3.40%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의 합의가 “2~3일 내 이뤄질 수 있다”고 언급한 데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도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 증가를 언급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후반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나오면서 유가는 낙폭을 일부 줄였다.
|
투자자들은 10일 발표될 5월 CPI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근 유가 급등과 중동 전쟁 여파가 실제 물가에 얼마나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주요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최근 월가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오는 12일 예정된 스페이스X IPO도 증시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약 750억달러를 조달하고 기업가치는 1조7500억달러로 평가받을 전망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 IPO다.
시장에서는 스페이스X 상장이 최근 기술주 변동성 확대의 배경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관투자가들이 대규모 공모주 청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가장 많이 오른 반도체주와 AI 관련주 일부를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월가에서는 최근 기술주 변동성이 커진 배경으로 스페이스X IPO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AI 투자 확대를 위한 대형 기업들의 신규 주식 발행이 잇따르면서 시장에서는 “과연 투자 수요가 이 물량을 모두 흡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앤서니 새글림벤 아메리프라이즈 수석시장전략가는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의 상장은 혁신 기업에 대한 강한 투자 수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일 수 있다”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기존 시장에서 일부 자금이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버블 붕괴 아닌 순환매”
월가에서는 최근 반도체주 조정을 AI 버블 붕괴의 신호로 보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버트 에드워즈 에드워즈자산운용 대표는 “대형 IPO는 강세장이 무르익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아직 광기(euphoria) 단계는 아니다”라며 “현재 시장은 여전히 투기적 상승 국면에 있으며 투자자들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랠리가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월가에서는 10일 CPI 발표와 12일 스페이스X 상장이라는 두 개의 대형 이벤트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근 흐름을 단순한 기술주 약세로 보기보다는 AI·반도체주에 집중됐던 자금이 경기민감 업종으로 이동하는 순환매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