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특정 아이돌 그룹과 관련하여 내려진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 및 본안 판결은, 전속계약 분쟁에서 주목할 만한 법적 쟁점을 다수 담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같은 그룹 소속 멤버들임에도 불구하고 계약 조건에 차이가 있었는데, 일부 멤버들은 기존 전속계약서 외에 별도의 부속합의서를 추가로 체결한 반면, 다른 일부 멤버들은 최초의 전속계약서만이 체결된 상태였다.
법원은 이와 같은 계약 조건의 차이를 고려하여, 전속계약서만 작성된 멤버들의 경우 수익분배 조항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보았다. 특히, 이들이 약 40억원의 매출 및 10억원가량의 수익을 기록한 해를 포함해, 데뷔 후 5년 9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은 계약의 실질적 불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에 법원은 해당 전속계약의 체결이 민법 제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해당 멤버들의 전속계약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였으며, 전속계약 무효확인에 관한 본안소송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4. 6. 20. 선고 2023가합20734 판결).
반면, 소속사와 추가적인 부속합의서를 체결하여 기존 전속계약서상의 수익분배 구조를 일부 수정한 멤버들에 대해서는, 비록 계약 조항 일부가 불공정하더라도 계약 전체가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항고를 제기하면서, 계약 무효 주장에 더해 별도의 계약 해지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새롭게 주장하였다. 이에 법원은, 멤버들의 계약 해지에 따른 전속계약 효력부존재 확인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인정하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즉, 전속계약이 처음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지만, 적법하게 해지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본안 소송에서도 전속계약 효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5. 4. 17. 선고 2023가합22808 판결).
|
이처럼 전속계약 관련 분쟁에서는 계약 체결 당시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계약 이행 과정에서의 신뢰관계 유지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계약서의 조항이 연예인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무효가 인정되기 어렵지만(계약의 무효가 인정되었던 위 판례 사안의 경우, 멤버들이 큰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5년 9개월동안이나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소속사의 중대한 계약 위반은 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전속계약은 단순한 법률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연예인의 커리어를 규정하고, 그들의 활동과 자유를 제약하고 좌우하는 실질적 틀이 된다. 특히 연예인 전속계약의 경우, 연예인의 이미지와 시간은 물론, 연예인의 창의성과 실연을 통해 발휘된 결과물들 역시 모두 계약의 대상이 되며, 그 대가와 책임은 수년간에 걸쳐 고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전속계약들이 형평성보다는 소속사의 이익을 보호,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성되어 왔고, 이로 인해 계약 당사자인 연예인의 법적 지위와 권리 보장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분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히 몇몇 계약 조항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전속계약이 ‘어떻게 체결되고, 어떻게 이행되며, 어떻게 종료되는지’까지의 전 과정이 공정하고 균형 있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 전속계약과 같이 당사자 간 오랜 기간 동안의 협업이 요구되는 경우, 단순히 계약의 문구뿐만 아니라, 그 계약 이행과정에서의 상호관계 역시 중요성이 크다. 계약 체결 시점에서는 법적으로 유효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행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훼손된다면 결국 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분쟁이 반복되는 이유도 결국 이 틀이 얼마나 공정하고, 유효하게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법과 제도의 개선만큼이나, 업계 전반의 계약 문화가 함께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장현지 변호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 석사 △대림문화재단 대림미술관/디뮤지엄 큐레이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11회 △(현)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