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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한지의 질감이 눈으로 전해진다. 때론 닥종이의 거친 결이 잡히기도 한다. 한지와 닥종이의 투박함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와 `한지작가`라 불리는 함섭이 `함섭 한지 40년` 전을 연다. 제목 그대로 한지로 회화작업을 해온 화업 40주년을 맞아 여는 개인전이다.
규모가 적잖다. 최근 2년간 작업한 작품 위주로 대작 회화 50여점을 골랐다. 200호 14점을 포함해 150호 10점, 100호 20점 등을 내놓는다. 지난해 3월 고향인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으로 낙향해 진행해온 작업을 총결산한 셈이다.
작품은 흙먼지가 날리고 땅냄새가 풍길 정도로 구수한 황토색이 주를 이룬다. 이전에 보이던 화려한 오방색은 많이 빠졌다. 이는 작업환경이 바뀐 것과 무관치 않다. 자연의 색이 스며들어 화폭이 질박해진 거다. 작가 자신도 “일련의 색과 면, 선들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고향의 풍요”라고 토로한다. 고희를 앞두고 흙으로 회귀한 심중이 그렇다.
작가는 `그림을 만든다`는 표현을 쓴다. 붓으로 작업하지 않고 불린 한지더미를 화폭에 던진 후 솔로 일일이 두드려 붙이는 방식 때문이다. 닥종이의 본래 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볏짚 태운 잿물에 삶아내 짓이겨 붙이기도 한다. 덕분에 한지와 닥종이의 물성은 더욱 단단해졌다.
가장 구체적인 재료로써 추상의 맛을 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우연처럼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한국적인 풍류다. 동네 어귀 세워두던 솟대가 보이기도 하고, 간혹 오방색이 곁들여지면 옛집의 단청이나 서낭당 깃발이 연상된다. 작가가 추구하는 건 결국 한지와 어우러진 오색의 민족얼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1일부터 20일까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웨스트브룩 갤러리에서 13일부터 열리는 한 달간의 초대전도 계획돼 있다. “오늘이 내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일흔 다섯까지 대작 위주로 작업할 것이란 노작가의 예술혼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