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등에 업고 수출이 초호황을 두렸지만 대다수 국민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출이 잘되는 대기업은 넘치는 달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만 내수위주의 중소기업들은 창고에 쌓인 재고에 넋을 잃었다.
45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데다 소득마저 끊긴 가계는 올들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가계소비는 지난해 1.5% 줄더니 올해 1분기에도 전년동기대비 1.4% 감소했다.
공장가동률이 80%를 넘는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연간 1.5%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도 전년동기대비 0.3% 감소했다.
수출로 이익은 계속 늘어나는데 투자를 하지 않으니 기업 금고에는 현금만 쌓여갔다. 제조업 상장사 등 1069개사의 현금 보유액은 3월말 현재 41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 수출이 모두를 살린다? `빗나간 기대`
정부와 한국은행은 수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수출이 잘돼 기업들 이익이 늘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대기업 투자가 늘면 중소기업이 살고 고용이 늘면 소득이 생긴 가계가 소비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은은 18일 내수회복 기대가 빗나갔음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소비와 설비투자는 4분기 연속 감소한데 이어 올해 2분기에도 회복할 조짐을 나타내지 않았다"며 "기업이 투자실행을 계속 늦추고 소비도 고유가 등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고 한 것. 당초 한은은 내수가 2분기에 회복조짐을 보인 후 하반기에는 본격 회복세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의 한 간부는 "소비보다 투자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재고도 줄었고 공장을 풀가동하면서도 왜 투자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생산을 계속 해야 하는데 언젠가는 (투자를) 하지 않겠는가"고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민간의 전문가들은 한은보다 훨씬 빨리 연내 내수회복의 꿈을 접었다. 오히려 지난달부터는 경기하강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증권사들은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잇따라 "하반기에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회복은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의 금리인상, 고유가의 지속이라는 대외 악재가 우리 경제를 옥죄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티그룹글로벌마켓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소비가 회복될 조짐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1분기 명목소득이 8%이상 늘었는데 명목 민간소비는 고작 1.7% 늘어난 현실을 보라는 지적이다. 국제 투자은행 UBS는 "소비의 의미있는 회복이 향후 수개월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고 CSFB는 심지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7%에서 4.2%로 대폭 깎아 내렸다.
◇ 무너진 고용, 좌절에 빠진 심리
정부의 올해 최대 경제치적이라는 고용은 어떨가. 4월중 취업자수는 전년동월비 52만명 늘었다. 실업률은 3.4%로 그대로였지만 취업자수는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로 드러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수 증가율은 2개월 연속 하락했고 계절조정을 해 보니 전체 취업자수도 3개월째 줄었다. 2월 이후 26만3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했고 실업률도 3.5%로 높아졌다.
삼성증권은 이렇게 논평했다. "수출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경기회복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수출호조로 유발되는 제조업의 고용창출은 제한적이었고 고용의존도가 높은 유통업 음식숙박업에 이어 건설업의 고용부진이 심화됐다. 고용부진은 내수, 특히 민간소비의 빠른 회복을 어렵게 할 것이다"
고용을 늘리는 길은 수출이 아니라 내수임은 자명하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수출을 100억원 해 봐야 157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반면 소비가 100억원 되면 240명, 투자가 100억원 늘면 161명이 직장을 잡는다. 또 제조업 생산이 100억원어치 증가하면 122명이 취업할 수 있지만 대표적인 내수업종인 서비스업은 같은 정도로 182명을 실업에서 구할 수 있다.
소비자와 기업은 경기회복 기대를 접었다. 소비자기대지수는 4월 99.9에서 94.8로 뚝 떨어졌다. 기준선인 100을 밑돈다는 것은 향후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해 보니 1분기 소매유통업의 경기전망지수는 전분기 116에서 올해 1분기 98로 수직낙하했다. 그 며칠전 한국은행이 조사한 제조업의 6월 경기전망지수도 82로 14포인트 급락했다.
◇ 떨어질줄 모르는 환율..내수부진에 한 몫
내수부진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의 고환율 정책도 단단히 한 몫 했다. 물가를 끌어올려 실질소득을 줄이고 내수기업들의 원가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협상력이 약해 고유가나 원자재값 상승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에게 고환율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