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헤지펀드 업계 종사자들은 금융위기가 헤지펀드 때문이라는 세간의 비난 여론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헤지펀드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마켓의 규모와 투자의 안정성 등에 제대로 대해 파악한다면 금융위기 주범이라는 말은 나올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일부 관계자들은 헤지펀드가 금융위기의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배경에 대해 헤지펀드가 신비와 부러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 "헤지펀드 마켓..금융위기 불러올 만큼 거대하다?"
CLSA 캐피털 파트너스의 최고 운영책임자 (COO,Chief Operating Officer) 데스몬드 여(Desmond Yeo)는 헤지펀드가 금융위기의 주요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헤지펀드가 주범이 되기에는 마켓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위기의 시작은 부동산 시장을 팽창시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이었다"며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투자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공포감이 시장의 위기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켓의 규모만 보더라도 서브프라임 시장이 헤지펀드 시장의 4배가 넘는 17조달러에 달한다"며 "일반적으로 헤지펀드하면 거대 자본으로 인식해 시장규모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금융위기의 주범이 되기엔 헤지펀드 몸집이 너무 작다"고 덧붙였다.
◇ "헤지펀드, 전략 선택이 중요하다"
작년 한 해 시장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긴 했지만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가에 따라 헤지펀드들의 수익률은 엇갈렸다. 이중에 매크로펀드(macro fund)와 커런시펀드(currency fund)의 퍼포먼스는 나름 괜찮았다는 평가다.
즉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헤지펀드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레버리지를 얼마나 일으켜 금융시장에 투자할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 COO는 "어떤 전략들은 아비트리지(arbitrage)와 같은 많은 레버리지(leverage)를 요구한다"며 "보통 아비트리지는 수익률이 작은 편이라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레버리지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고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애초에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CLSA가 신용 한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레버리지를 적게 일으키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CLSA와 같은 경우에는 매수 포지션과 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는 롱숏 에쿼티(long-short equity) 마켓에 주력했기 때문에 레버리지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CLSA의 펀드는 40%가 현금으로 구성돼 있어 투자를 위해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 "헤지펀드가 뮤추얼펀드보다 더 위험하다?"
헤지펀드 리서치 업체 GFIA의 대표 피터 더글러스는 "대부분 사람들이 뮤추얼펀드가 헤지펀드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익률을 창출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우선 뮤추얼펀드는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마켓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뮤추얼 펀드의 경우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 투자를 하고 원금을 다시 갚아야 하기 때문에 빌린 돈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데, 이때 채무와 수익률이 매치되지 않는 리스크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헤지펀드는 운용수수료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절대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뮤추얼펀드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가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된 이유는 진짜 금융위기를 유발한 기관들을 비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헤지펀드가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글러스 대표는 "무리하게 진행된 은행권 대출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욕심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금융위기가 왔을 때 부실 금융권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대형 은행들이 정부와 함께 공조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대형 은행들을 비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며 "따라서 헤지펀드가 가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가 쉽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작은 헤지펀드가 대세"
금융위기를 맞아 이 가운데 경쟁력 없는 헤지펀드는 퇴출될 수 밖에 없다. 무분별한 레버리지와 공매도 등으로 무리하게 투자에 나섰거나 규모가 작은 헤지펀드가 주요 퇴출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더글러스 대표는 오히려 작은 헤지펀드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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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올해 헤지펀드 산업은 30% 가량 감소했고 아시아에서만 15%가 줄어들었는데 이번 금융위기에 대한 부담으로 레버리지를 덜 일으키려고 할 것"이라며 "앞으로 헤지펀드 산업은 계속해서 줄어들 수 밖에 없다"으로 내다봤다.
다만 아시아지역 헤지펀드는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레버리지가 아시아 헤지펀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캐피탈 마켓이 작아짐에 따라 기존의 헤지펀드 매니저 역시 점차 줄어들 것이고, 레버리지가 떨어지면서 큰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규모 헤지펀드들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점차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난 몇 년간 데이터를 보면 규모가 큰 헤지펀드들 사이에 있던 작은 헤지펀드들의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10~12% 정도 낮았지만 큰 헤지펀드들이 줄어들면서 미래에는 작은 규모의 헤지펀드들이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글러스 대표는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같은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뱅크들이 구조조정되면서 살아남은 헤지펀드들에게는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 헤지펀드 수익률은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