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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0 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에 난민 수용 수를 1만8000명으로 대폭 줄일 계획이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최대 11만명까지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해부터 난민 상한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등 수용 인원을 지속 감축해왔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날 내달 1일부터 시작되는 2020회계연도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난민 수를 1만8000명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9회계연도 3만명 대비 40%나 줄인 것이다. 국무부는 난민 수용 쿼터가 처음 창설된 198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줄일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 해부터 강력하게 추진해 온 반(反) 이민 정책에 따른 결과다. 그는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난민 수용 궈터 축소, 비자발급 제한 및 심사 강화 등 미국으로 입국하는 이민자 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들을 전방위적으로 펼쳐 왔다.
오바마 전 행정부는 2017회계연도(2016년 10월~2017 9월) 난민 입국 쿼터를 11만명을 책정했다.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2018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난민 입국 쿼터를 4만500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 이듬해인 2019회계연도에는 3만명 상한, 실제 수용 인원 2만9000명 등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미국은 1980년 이후 매년 평균 9만명 수준의 난민 입국 쿼터를 설정해온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9·11 테러가 발생했던 2000년대에도 평균 7만~8만명이었다. 역대 최저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6년의 6만7000명이다.
다만 2001년 9·11 테러 당시에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7만명으로 설정한 것이고, 테러가 일어난 뒤에는 2만7000명을 받아들이는데 그쳤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설명했다.
국무부는 이날 1만8000명 중 5000명은 종교로 박해를 당하고 있는 국가 출신의 난민 등 특수한 경우를 위해 할당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1월 재선을 앞두고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를 지원사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망명자들을 위한 자리는 1500명으로 제한됐다. 문제는 이들 3개국에서 망명하는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를 포함해 현재 미국 국토안보부에 인터뷰를 신청한 대기 난민 수는 3만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미군과 함께 일해 온 이라크 국민 10만7000명이 난민으로 미국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날 국무부가 난민 수용 계획을 발표한 뒤 시민·인권 단체들은 물론 내부 관료들까지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제투명성기구 미국지사의 라이언 메이스는 “난민 수용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은 존엄과 평등, 공정 등을 추구해 온 미국 행정부가 그같은 가치 대신 증오와 분열, 편견을 조장하겠다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많은 난민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온전히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간 협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국무부의 제안보다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이번 국무부 발표에 앞서 미군 지도자 출신 12명은 트럼프 행정부에 난민을 지속해서 미국에 입국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