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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자산운용에 오기로 결심하면서 플랫폼(Platform)을 제대로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와서도 그것부터 한거구요. 기존 펀드들을 더욱 잘 운용할수 있도록, 또 앞으로 출시할 새 상품들도 잘 운용하도록 하려면 플랫폼 구축부터 제대로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취임 한달만에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포트폴리오(PM), 트레이더, 리서치의 기능을 좀 더 명확히 구분한 것이 핵심이다.
강 회장과의 인연을 통해 KDB자산운용에 영입됐다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부터 헤지펀드사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던 전 대표와 같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규모도 얼마 되지 않는 한국 펀드시장에, 그것도 업계내 수탁고 규모 14위(8월 현재, 7조2207억원)의 중소형 자산운용사에 온 것은 다소 의외다. “그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성장 엔진이 꺼진 회사같아 보였다고 할까요. 성장 엔진이 가동중인 회사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이를 끄고 새로 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예요. 하지만 꺼져있는 엔진을 켜는 것은 해볼만한 일 같았죠. KDB자산운용을 오겠다고 결심한 순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와서 보니 제가 구상했던 그림들이 충분히 그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아무리 피곤해도 항상 즐겁습니다.”
그가 그리려는 ‘그림’은 이미 스케치가 시작됐다. 조직개편도 그 중 하나였고, 인력 영입도 했다. 최근 현대증권에서 트레이딩 헤드를 영입했고, 크레디트스위스(CS) 출신인 해외마케팅 담당 이사도 선임했다. 그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신규펀드도 출시 준비중이다.
전 대표는 2008년 한국금융지주와 싱가포르에 케이-아틀라스(K-Atlas)캐피탈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사를 설립하면서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그가 몸담은 헤지펀드들은 여러번의 금융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비결을 우리 펀드시장에서 경쟁력 강화와 연관지어 얘기한다. “클래식한 정장은 유행을 타지 않죠. 여기에 넥타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게 정장입니다. 매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한다고 해서 멋스럽지는 않은 것처럼 금융도 그렇습니다. 테마 투자와 같이 유행에 따라 그 성격이 확 바뀌는 상품으로는 장기간 성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 제가 지난 20년간 경험을 통해 배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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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는 꾸준한 수익이 관건이예요. 펀드마다 그 규모의 한계가 있습니다. 1억달러짜리 헤지펀드가 성공했다고 해서 이를 마구 늘려 10억, 100억달러로 덩치를 불리다보면 기존의 투자전략이 먹히지가 않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기존 투자자들에 꾸준한 이익을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덩치를 키워 더 큰 이익을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리스크를 키우는거죠.”
콜롬비아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월가에 발을 들인 계기는 베어스턴스를 통해서다. 베어스턴스에 입사해 남미 전문 스트레티지스트(strategist)가 됐다. 90년대 초반 월가는 아시아보다 남미에서 더 많은 돈을 벌 만큼 주요한 전략적 지역이었고, 한국계인 그가 남미 전략 대표를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남미통’이 된 그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와채 스왑협정에도 참여한 바 있다. 베어스턴스 본사 전체에서 언론과 인터뷰 권한을 가진 단 3명중 한명이 전 대표였을 정도로 그의 입지는 컸다.
전 대표는 그가 가진 금융 경험과 노하우의 기반을 쌓은 곳이 베어스턴스라고 말한다. 그만큼 2008년 베어스턴스의 몰락은 그에겐 유독 쓰라린 경험이다. “당시 저는 이미 헤지펀드로 자리를 옮긴 이후였긴 하지만 10년을 몸담았던 옛 직장에서 동료들, 친구들이 직장을 잃는 모습을 가까이서 봐야 했어요. ‘경영진 리스크’도 이를 통해 경험한 셈이지요. 과거 베어스턴스는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던 금융회사였지만 경영진이 바뀌면서 이도 바뀌었어요. 월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보너스를 받는 게 목표가 돼 버렸고, 이는 리스크 높은 운용으로 이어졌죠.”
한국말도 꽤 능숙한 그이지만 한국에서 근무는 처음이다. 뉴욕이 그의 주 무대였고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험도 있지만 한국은 그에겐 아직 낯설다. 동시에 한국과 인연도 남다르다. 90년대말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의 자문역으로 활동했고, 2000년대엔 조지 소로스가 그가 몸담고 있던 디스커버리캐피털매니지먼트에 거액의 자금을 위탁, 이를 운용한 것을 계기로 소로스펀드 대표자격으로 서울증권의 이사회멤버로 활동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는 청와대 경제정책자문관으로도 활동했다.
뉴욕에 비해 한국시장이 너무 작지 않은지 물었다. “전혀요. KDB자산운용을 세계시장 무대에 올려놓겠다는 각오로 일하면 되지 않을까요?”
데이비드 전(David Chon) KDB자산운용 운용부문 대표는…
콜롬비아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1993년 월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에 입사에 2000년까지 이머징마켓 수석 전략가 등으로 활약했다. 2000년 헤지펀드 운용사인 트라이스타어드바이저스(Tristar Advisors)를 설립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뉴욕소재 유명 헤지펀드사인 디스커버리 캐피털 매니지먼트(Discovery Capital Management)와 아틀라스 캐피털매니지먼트(Atlas Capital Management)에서 수석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 한국금융지주와 싱가포르에 케이-아틀라스(K-Atlas)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사를 설립, 최고운용책임자(CIO)도 겸직했다. 2010년부터 뉴욕 소재 웨이스 멀티 스트레티지 어드바이저스(WEISS Multi-strategy Advisers)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지내고 지난달 KDB자산운용 운용부문 신임대표로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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