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수미기자] 어느덧 새 정부의 금융정책이 추진된 지도 100일이 가까워졌다.
당초 새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밝혔지만 석 달이 지난 후의 성적표는 그다지 신통치 못한 모습이다.
◇ 맘껏 뛰놀 운동장인가 빗장 풀린 마굿간인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석 달 동안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 두 금융감독당국 수장들은 입을 모아 규제완화를 외쳤다.
전 위원장은 은행과 증권은 물론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금융권역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를 첫번째 과제로 내세웠고, 김 원장 역시 `원장 직속으로 규제완화 전담팀을 만들겠다`며 규제완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해 왔다.
금융위는 지난 3월 금융규제를 기능별·금융권역별로 나눠 전수조사를 실시한 뒤, 이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존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예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사 수위도 규제를 존치, 완화, 폐지 3등급으로 분류해 존치나 완화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금융규제개혁자문위에서 존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폐지한다는 정도로 수위를 높였다.
금감원 역시 유상증자 및 기업공시, 보험 등 부문별 규제를 완화하고 현장 검사를 대폭 축소하는 등 소비자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규제완화를 통한 강한 개혁 방침을 밝혀 왔다.
그러나 감독당국의 이 같은 질주는 안전선이 없어 위태로워 보인다는 지적이다. 규제완화라는 거대한 명분에 매몰된 나머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해진 모습이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은 감독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카드 사태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 시발점도 아주 작은 규제완화였다. 가두 모집 비용을 눈감아 주면서 개별 카드사들이 무리한 외형 확장에 나서게 되고, 그러다 보니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카드산업 전체의 붕괴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계 종사자들은 금융산업을 다 타고 없어진 후에야 출입을 통제했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제2의 숭례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없는 무조건적인 금융규제 완화는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완화 강박증` 탈피해야
감독당국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진 나머지 규제완화 작업이 졸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금융위 출범 직후 중점적인 과제로 추진됐던 금융규제 전수조사는 불과 열흘 만에 `해 치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금융위의 제1차 금융규제개혁심사단 회의 결과에 따르면, 총 4차로 나눠 모든 금융규제에 대한 타당성 여부와 존치 필요성 여부를 심사하는 일정이 권역별로 모두 10일 이내에 마무리 짓도록 논의됐다.
진입·업무 역영의 경우 4월 10일부터 20일까지, 자산운용 및 건전성 감독의 경우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의 식이다.
당초 금융위는 민간 중심으로 구성된 `금융규제개혁심사단`을 구성해 이 달 말까지 조사 및 심사를 완료하면 오는 7월 이를 바탕으로 금융규제 개선방안을 마련한 뒤 9월 관련 감독규정 개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조직이 아예 새로 만들어진 금융위원회 실무진들이 아직 업무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정을 맞추기 위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조사가 진행된 것이다.
금융위 규제완화 실무진들은 ``할당`을 채우기 위한 규제 완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결과를 얻기 위한 규제 완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고 규제완화에는 반드시 사후 관리가 따라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규제완화는 오히려 금융산업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무조건적 검사 축소, 해법 아니다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 방안 중 하나는 검사의 대대적인 축소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이후 "현장 검사 및 종합 검사를 줄이고 서면 검사를 늘리는 등 검사를 대폭 간소화하겠다"고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아울러 "지적이나 제재 중심이 아닌 컨설팅 중심의 검사를 제공하겠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권위 의식을 탈피하고 철저하게 수요자 중심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겠다는 것이 금감원이 밝혀온 변화·혁신 방안의 골자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감독당국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트렌드에도 오히려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바젤Ⅱ 시행을 앞두고 미국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은행에 대한 현장 감독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젤Ⅱ가 신용위험 관리를 가장 중요한 검증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영진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리스크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라 보고, 바젤2 선진내부등급법의 시행을 앞두고 선도은행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바젤Ⅱ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전세계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위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의 검사는 `수사`일 수 있다"며 "금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금융회사들이 고객들의 돈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검사를 무조건 컨설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감독당국의 검사"라며 "만일 검사가 컨설팅으로 진행됐다면 감독당국은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