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Strategic Petroleum Reserve

정명수 기자I 2004.05.20 14:10:39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미국 휘발유(가솔린)는 주마다 가격 차이가 크다. 세금과 환경 부담금 같은 것이 주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뉴욕주의 맨해튼과 뉴저지주의 휘발유 가격은 작게는 갤런당 10센트, 많게는 30센트나 다르다. 지난해 여름 휘발유 가격을 좀 아껴보겠다고 뉴저지주를 지나는 길에 그곳에서 기름을 넣은 적이 있다. 뉴욕보다 10센트 정도 쌌던 기억이 난다. 10갤런 정도 기름이 들어가니까 약 1달러 정도 절약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주유소가 셀프 서비스가 아니라 주유원이 기름을 넣어주는 시스템이었다. 눈딱감고 팁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는데 주유원이 차 앞창까지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뒤통수가 뜨거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기름값에 1달러를 팁으로 주고 말았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미국의 가솔린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린다. 들로 산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많아지면서 가솔린 소비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올 여름은 특히 더하다.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유가가 급등하면 꼭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SPR) 방출이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됐다. 민주당의 존 케리 대통령 후보는 "부시 대통령은 유가를 잡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며 "SPR을 방출하지 않을 거라면 비축이라도 중단하라"고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SPR은 국가 비상시에 쓰기 위한 것"이라며 "SPR 방출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받아치고 있다. SPR이 도대체 뭔데 이렇게 난리인가. 부시는 왜 SPR 방출을 그렇게 꺼리는 것일까. SPR과 유가와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지금 전세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유가 상승은 기조적인 것일까, 아니면 일시적 현상일까. ◇SPR의 기원 미국 정부가 처음 SPR을 생각해낸 것은 1944년이다. 당시 내부장관이었던 헤롤드 아이크는 비상시를 대비한 원유 저장을 주장했다. 1952년 트루먼 대통령 시절 광물정책위원회도 전략유 개념을 제시했다. 1956년 수에즈 위기를 겪으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석유 비축을 제안했다. 1970년에는 테스크 포스가 만들어져서 석유 비축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SPR을 설치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73년부터 시작된 오일쇼크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 쿼터를 조절하면서 석유를 무기화하자 물쓰듯이 기름을 썼던 미국도 큰 충격을 받았다. 포드 대통령은 1975년 12월 SPR을 설치하고, 에너지정책 및 보존 법안(Energy Policy and Conservation Act:EPCA)을 만든다. 이 법에 따라 SPR 프로그램으로 최대 10억배럴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 원유를 어디에 저장할 것이냐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됐다. 미국 정유설비의 대부분이 집중돼 있는 걸프만 연안이 SPR 부지로 선정됐다. 1977년 4월 미국 정부는 텍사스와 루이지아나 연안의 소금 퇴적지(salt deposit)에 있는 몇개의 지하 소금 동굴(cavern)에 원유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SPR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산으로 41만2000배럴이었다. 걸프만 일대가 미국 정유산업의 심장부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지질 구조도 SPR 입지로는 최적이다. 소금 퇴적지에 인공적으로 동굴(원유 저장고)를 건설하는 비용이 지상에 탱크 저장고를 만드는 것보다 10배는 싸다. 소금 암반을 2000피트(600미터) 내지 4000피트 정도 파고 내려가서 지름 200피트 규모의 동굴을 만드는 것이다. 동굴 굴착은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소금층이기 때문에 강한 수압으로 물을 집어 넣으면 소금이 쉽게 녹아나온다.(solution mining) 유입된 물의 양을 바꿈으로써 동굴 규모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SPR 지하 저장고는 수십층 짜리 건물을 집어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저장고가 걸프만 일대에 50여개 건설됐다. 소금 퇴적층은 지압의 영향으로 저장고의 균열을 스스로 막아내는 특성이 있다.(self-healing) 지하 저장고에서 원유는 상하 지열 차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대류를 일으켜 섞이게 된다. 원유를 어떻게 다시 뽑아올릴까. 저장고 바닥까지 물을 집어넣으면 물과 기름의 비중 차이에 의해 원유는 위로 밀어올라오게 된다. 지상으로 올라온 원유는 파이프 라인을 인근 정유시설로 옮겨진다. ◇SPR 방출 요건 현재 SPR 규모는 6억6000만배럴 정도다. 53일간 미국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원유를 포함한 미국 전체 비축유 규모는 150일 분이다. 법적으로 SPR은 10억배럴까지 저장할 수 있고, 부시 행정부의 저장 목표는 7억배럴이다. SPR의 평균 도입 단가는 배럴당 27.14달러다. SPR 방출 요건은 법(EPCA)으로 정해져 있다. 대통령이 방출을 결정하면 에너지장관이 이를 집행, 2주 안에 원유를 시장에 공급하도록 돼 있다. EPCA에 따르는 방출 요건은 이렇다. 에너지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을 때 SPR을 방출한하다. `심각한 차질`은 대통령이 판단하는데 1) 긴급상황이 상당한 정도로, 상당 기간 계속될 때 2) 국가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야기할 때 3) 석유 수입에 제약을 받거나, 국내 석유 제품 공급에 제약이 발생하거나, 자연재해 또는 사보타지 등이 발생했을 때 등이다. EPCA는 `석유 공급의 제약`도 대통령이 판단하도록 했는데 1) 긴급상황이 발생, 공급 차질이 상당한 정도로, 상당 기간 계속될 때 2) 긴급상황으로 유가가 급속하게 상승할 때 3) 이같은 유가 상승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야기할 때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서 SPR을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방출할 수 있다. SPR은 기술적인 문제, 즉 원유의 품질을 유지하거나, 저장 원유를 교체할 때도 방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SPR은 몇차례 방출된 사례가 있다. 1985년 테스트 방출이 있었다. 1996년부터 1997년 사이에는 비상상황은 아니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방출된 예가 있다. 2000년에도 원유 교체 방식으로 SPR이 방출됐다. SPR의 의미에 맞는, 그야말로 국가 비상시에 방출이 된 예가 단한번 있다. 바로 1990년, 1991년 걸프전 때다. 현재 대통령인 부시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1990년 12월, 1991년 1월 `사막의 방패,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하면서 SPR을 방출했었다. ◇SPR의 정치·경제적 의미 SPR은 비상시를 대비한 비축유 이상의 의미가 있다. SPR 저장고의 위용, 저장고 건설에 사용된 기술, 투입된 자금 등을 생각하면 SPR은 `미국의 힘`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걸프만 연안에 줄지어 있는 SPR 지하 저장고는 건설 비용만 40억달러가 들어갔다. 원유 도입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재정적자로 고통받는 가운데서도 꼬박꼬박 SPR을 비축해왔다. 미국은 막대한 규모의 SPR을 바탕으로 중동국가들의 `석유 무기화`를 제어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유가를 묶어 둘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SPR 용 원유를 시장에서 사들일 때 국제 유가가 출렁거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미국의 SPR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클린턴 행정부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시장 교란을 이유로 SPR 비축을 중단했다. 심지어 1996년과 1997년에는 SPR을 방출, 재정적자를 충당하기도 했다. SPR은 6억배럴 미만으로 낮아졌다. 1999년 2월 클린턴 행정부는 새로운 SPR 비축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걸프만 일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석유 채굴권을 민간 기업들에게 대여해주는 댓가로 원유 현물(royalties "in kind")을 받아, 이를 SPR로 비축한 것이다. 행정부는 원유 생산량의 12.5~16.7%를 로얄티로 받아서 SPR로 비축하기 시작했다. 클린턴은 SPR을 `현실적인 용도`로 격하(?)시켰다. 필요하면 꺼내서 쓰고, 다시 채워넣을 수 있는 자원으로 여겼다. 클린터의 뒤를 이은 부시 대통령은 SPR에 다시 `정치적 상징성`을 부여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비상시에 대비한 SPR 비축 규모를 대폭 확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1년 11월 발효된 법안에 따라 SPR은 내년까지 7억배럴을 비축하도록 돼 있다. 이쯤에서 부시 대통령이 왜 SPR 방출을 그렇게 반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 부시가 처음으로 꺼내 쓴 SPR을 아들 부시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테러 사태 이후 대폭 확충하도록 조치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상기시키고, SPR과 같은 비상수단을 강화했다. 국제 사회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라크 전쟁까지 치뤄냈다. 유가가 조금 오른다고 해서 다시 SPR을 방출한다면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SPR을 꺼내 썼다"는 기록을 역사에 남기게 되는 것이다. ◇정치공세 민주당이 부시의 이같은 약점을 가만히 둘 리 없다. 케리 후보는 유가가 급등하자, 연일 SPR을 방출하라고 부시를 압박하고 있다. 케리 후보는 "부시는 2000년 대선 당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유가가 오를 때 `jawbone`으로 OPEC을 설득, 생산량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었다"며 "지금 부시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OPEC을 강력하게 설득, 가격 상승을 막겠다던(Jawboning) 약속을 이행할 수 없다면 SPR 꼭지라도 열라는 것이 케리와 민주당 진영의 주장이다. 민주당의 톰 대슐 상원의원도 "SPR에서 3000만배럴을 방출, 유가를 떨어뜨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진영의 주장대로 SPR을 열면, 유가가 떨어질까. 아버지 부시가 비상시에 SPR을 방출한 것 외에 유가 안정을 위해 SPR을 방출한 경우가 2000년 가을에 있었다. 우선 1991년 걸프전 당시 SPR 방출이 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자. 당시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부시 대통령이 사우디에 군대를 보내 후세인을 압박하면서, 전쟁이 임박해졌고, 국제 유가는 45달러선을 향해 줄달음쳤다. 부시 대통령은 1991년 1월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명명된 걸프전쟁을 시작하면서 SPR 방출을 지시했다. 국제 유가는 이미 1990년 12월 SPR의 시험 방출을 기점으로 한풀 꺾인 상태였다. 걸프전 발발 직후 유가는 배럴당 18~2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이때 유가 하락을 SPR 방출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이 후세인을 공격키로한 것 자체가 불확실성 제거로 받아들여지면서, 유가 안정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가을 상황을 보자.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난방유 재고가 평소보다 낮게 유지되면서 겨울철 연료 대란이 우려되자, SPR과 비슷한 개념으로 난방유비축 프로그램(Heating Oil Reserve)을 발표했다. 그해 8월29일부터 난방유비축이 시작됐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SPR 사용에 융통성을 가지고 있던 클린턴 대통령은 일단 SPR에서 3000만배럴을 정유사들에게 빌려주고, 이듬해 이자를 붙여 현물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SPR 방출을 단행한다. 9월22일 이같은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직전 유가는 고점을 찍고 하락 반전한다. 배럴당 37달러선을 웃돌던 유가는 일주일만에 30달러선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의 SPR 방출로도 유가는 안정되지 않았다. SPR 방출 효과는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그해 겨울 날씨가 예상보다 춥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에야 유가는 큰 폭으로 떨어져 20달러대에서 안정된다. 이때 SPR 방출을 놓고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의 SPR 방출 공세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SPR 방출이 유가 안정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받아칠 수 있는 것도 2000년 가을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SPR 방출은 유가를 잡는 초단기 요법일 뿐이다. 현재의 부시 대통령이 유가를 잡기 위해 SPR 방출을 못할 것도 없지만, 앞서 지적한 정치적 상징성때문에 SPR 꼭지를 여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 급등을 보는 두가지 시각 최근 유가 상승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현재 유가 상승이 기조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냐를 따져봐야한다. 최근 유가 상승은 공급 사이드의 문제라기보다는 소비 사이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원유 생산량의 절반을 소비하고 있다. 중국, 인도 등이 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무절제(?)하게 원유를 소비했다는 분석이다. 방만한 자원 소모는 인플레를 자극하고, 이는 경제를 경착륙시키는 요인이 된다. 생산 감축이 유가 상승을 자극했지만, 생산을 늘려도 소비를 따라갈 수 없다면 유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테러리즘이라는 돌발 악재까지 붙어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가 상승이 기조적이라기 보다는 계절적, 마찰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솔린 가격의 급등이 대표적이다. 미국내 가솔린 소비는 1년전에 비해 4.6%나 늘어났다. 반면 정유설비 가동률은 10년 평균인 94.4%를 넘나드는 정도다. 여름철은 가솔린 소비가 급증하는 계절인데다, 최근 몇년간 SUV 판매가 크게 늘어나면서 가솔린의 절대소비량이 증가했다. 미국의 정유설비가 이같은 변화를 미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회복과 SUV 판매량을 감안한 수요 분석을 다시하고, 정유설비를 확충하면, 가솔린 가격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현재 국제 원유시장에는 장기적이고 기조적인 유가 상승 요인과 단기적이고 마찰적인 유가 상승 요인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SPR 방출과 같은 대증요법으로는 유가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케리 후보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SPR을 정치쟁점화해서 태평하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유가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유가 급등이 정말로 그렇게 심각하다면 미국은 SPR이 아니라 더한 카드라도 내놓고 유가를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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