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최근 1년 간 미국 인플레이션은 주로 공급망 차질과 국제유가, 음식료품 가격 상승에 관한 문제였다면,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미국 경제 전반에 두루 퍼졌음을 보여줬다.
공급망이 다소 풀리고 유가가 내려가면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던 기대도 접어야 할 판이 됐다. 게다가 연말로 갈수록 하향 안정됐던 유가가 다시 뛸 수 있는 위험도 커질 수 있는 만큼 상황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미 노동부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8.3% 상승하며 앞선 6월의 9.1%, 7월 8.5%에 이어 두 달 연속으로 둔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월가에서 전망했던 8.0%보다는 크게 높았다. 전월비로도 0.1% 하락할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0.1% 오히려 올랐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음식료를 제외함으로써 경제 기저에 흐르는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소비자물가는 8월에 전년동월대비 6.3%, 전월대비 0.6%나 올랐다. 이는 월가 전망은 물론이고 7월 수치까지도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물가 상승이 휘발유 가격 상승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8월에 휘발유 가격은 10.6%나 급락했는데도 음식료품과 주택 임대료, 의료서비스 등 전반적인 가격 상승세가 가팔랐던 탓이다. 실제 8월 중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무려 6.8%에 이르렀다.
마크 잔디 무디스 어낼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경제 전반에 물가 압력이 얼마나 강한 지를 잘 보여줬다”면서 “새 자동차와 의료서비스, 임대료 등 모든 분야에서의 물가 오름세가 강했다는 게 이번 물가지표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8월 중 신차 가격과 의료서비스 물가는 각각 0.8%나 올랐다.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1에 이르는 임대료와 주택관련 경비를 포함하는 주거비 역시 0.7% 올랐다. 음식료품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해 먹는 음식값 지수는 13.5%나 올라 1979년 3월 이후 무려 4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의료서비스 물가도 2019년 10월 이후 최고치였다. 소비자물가지수 구성 항목 중 무려 4분의3이 전년동월대비 4%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다.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아직까지는 낮아진 유가가 다시 올라가지만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이 완화하면서 2024년 초에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 목표치인 2%에 근접할 수 있다는 기존 전망을 유지하곤 있다”면서도 “다만 오늘 나온 지표를 보고 난 뒤엔 자신감이 좀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나마 물가 하향 안정에 일조했던 에너지 가격이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들썩 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달부터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들이 12월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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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브루셀라스 RS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러시아가 이에 대항하기 위해 EU와 미국, 영국에 대한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면 유가는 지난 6월의 최고치를 다시 넘어설 수도 있고, 천연가스 가격도 현 수준보다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렇다 보니 이번주 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연말에 미국인들이 다시 휘발유 값 상승을 걱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글쎄, 그럴 위험은 있다”면서 “그런 리스크에 대비해 우리는 휘발유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겨울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할 것이고, 러시아가 유조선을 통해 원유를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제공을 금지할 것”이라며 이런 요인들로 인해 원유 가격이 다시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이라면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의외로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시장에서는 다음주에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이 정책금리를 75bp, 상황에 따라 100bp까지도 올릴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퀸시 크로스비 LPL파이낸셜 수석 주식전략가는 “연준 목표 2%는 물가 안정 수준을 뜻하며 그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며 “2%까지의 물가 안정은 쉽지 않아 보이며, 이런 점에서 연준의 금리 인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경제가 충격을 받은 상황까지도 인상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